세계무역기구(WTO)가 올해 무역 성장률 전망을 대폭 하향하며 세계경제 침체에 대한 위기감이 짙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관세 충격’에 1분기 역성장 가능성까지 나오면서 경기 부양을 위한 5월 금리인하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16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WTO는 올해 글로벌 상품 무역 성장률 전망을 종전 3%에서 -0.2%로 대폭 하향하고, 90일간 상호관세 유예가 이대로 끝날 경우 감소폭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WTO는 “상호관세를 전면 재도입할 경우 세계 상품 무역 성장률은 0.6%포인트 추가 하락하고, 그에 따른 파급 효과로 0.8%포인트 추가 감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전쟁’에 따라 미국 경제의 성장 둔화를 경고했다. 그는 이날 미국 시카고 이코노믹클럽에서 한 연설에서 “지금까지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관세 수준은 예상보다 훨씬 높다”며 “경제에 인플레이션 상승과 성장 둔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로서는 더 많은 명확성을 기다려야 한다”며 통화정책을 조정하지 않고 관세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지켜보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17일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연 한국은행도 비슷한 이유로 기준금리를 2.75%로 동결했다고 밝혔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충격을 비유를 들자면 갑자기 어두운 터널로 들어온 느낌이었다”면서 “(통화정책의) 스케줄을 조정하면서 좀 밝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라고 동결 결정의 배경을 밝혔다.
이날 한은은 국내 정치 불확실성 장기화, 예상보다 강화된 미국 관세 정책의 영향으로 3월 중 경제심리가 다시 위축됐다고 봤다. 여기에 영남지역 대형 산불 등 일시적 요인까지 겹치면서 1분기 성장률은 지난 2월 전망치인 0.2%를 밑돌 것으로 추정했다.
이 총재는 “1분기 중 소폭의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를 감안할 때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지난 2월 전망치 1.5%를 하회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미 해외 투자은행(IB) 사이에서는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이 1% 안팎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JP모건은 한국 경제성장률을 최근 1.2%에서 0.7%로 하향 조정했고, 씨티와 노무라도 1%대 턱걸이 수준인 1.2%를 제시하고 있다.

한은은 수정된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다음 달 발표할 예정이다.
이 총재는 정치권이 논의 중인 12조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에 대해서는 “0.1%포인트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은은 파월 의장이 통화정책 관망을 시사했지만 한은의 추가 금리인하 여력은 있다고 봤다. 이 총재는 “2023년 이후 미국 금리정책과 상당 폭 디커플링(탈동조화)돼 있어 미국과 기계적으로 금리 차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없다”며 한·미 금리차에 대한 영향은 고려하겠지만 국내 경기를 앞세워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금통위 6인 전원은 경기 하방리스크를 감안해 3개월 내 기준금리를 연 2.75%보다 낮은 수준으로 인하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시장에선 다음 달 29일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한 달 사이 원·달러 환율이 다소 진정되고, 미 관세 정책 등에 따른 경기 악화가 더 뚜렷해지면 이를 바탕으로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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