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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선 ‘3816개의 기후’…“기후소송은 이대로 괜찮겠냐는 질문” [기후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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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4-18 09:00:00 수정 : 2025-04-17 18:3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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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외 기후소송 사례 1213건 중
정부 소송 73%…감축·인권 쟁점
“기업은 그린워싱 소송 증가 중”
기후소송 승률은 대체로 저조
법정 밖에서 진전 이끌기도

#1 기후솔루션·경기환경운동연합은 지난달 5일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용인 국가산단) 계획의 승인 취소를 청구하는 행정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다. 용인 국가산단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조성하고 삼성전자가 360조원, SK하이닉스가 122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생산시설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3GW(기가와트)급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설치 계획만 제시했을 뿐 예정 공급량(10GW·2050년 기준) 중 7GW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을 누락하는 등 기후변화영향평가 부실 수행이 행정소송 주요 청구 취지 중 하나로 포함됐다. 

 

#2 청년 기후활동가 7명과 한국가스공사 소액주주 3명은 지난달 10일 가스공사의 아프리카 모잠비크 코랄노스(Coral North) FLNG(부유식 가스 생산 설비) 사업 5억6200만달러(약 7900억원) 투자 결정에 대한 집행 금지 가처분 소송을 대구지법에 제기했다. 이들은 가처분이 필요한 이유로 이번 투자 결정이 ‘국가의 기후위기 대응 의무를 저버린 데다 화석원료 수요가 줄어드는 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위험도가 높은 배임적 의사결정’이란 주장을 내세웠다. 국제 에너지 감시단체 링코(LINGO)에 따르면 모잠비크 가스 사업 운영기간 중 배출 예상 온실가스는 총 4억8900만t(이산화탄소 환산량)으로 우리나라 한해 총 배출량 4분의 3 수준이다.

 

 

11∼18세 청소년 10명이 올 2월 서울 삼성동 포스코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포스코 광양 제2고로 개수 중지를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히고 있다. 기후솔루션 제공

이는 모두 우리나라 법원에 최근 제기된 기후소송이다. 기후솔루션을 통해 확인되는, 현재 진행 중인 국내 기후소송(정부기관 신고·감사 청구 포함)만 7건이나 된다. 전 세계에서 이런 기후소송이 여태까지 3800여건 제기된 것으로 나타났다. 온실가스 감축, 인권, 에너지·전력 등 다양한 쟁점을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다. 다만 정부 대상으로 한 기후소송 ‘승률’은 현 시점에서 전 세계적으로 비교적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그 의미가 헛된 건 아니다. 기후위기가 연일 심화하는데도 제 각각 논리에 발이 묶여 옴짝달싹 않는 정치와 행정에, 사법부를 ‘지렛대’로 삼은 기후소송이 조금씩 균열을 내고 있단 평가다. 

 

◆정부·기업을 향한 기후소송의 ‘칼날’

 

16일 기준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 기후변화법 연구기관 사빈센터(Sabin Center)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기후소송 건수는 현재까지 모두 3816건(미국 2603건·미국 외 1213건)에 이른다.

 

소송 대상과 사유가 분류돼 있는 미국 외 전 세계 사례만 따져보면 역시 정부 소송이 887건으로 전체 중 73.1%를 차지했다. 사유를 보면 전통적으로 개발 사업 관련 환경영향평가·허가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온실가스 감축·인권 등도 이 못지 않게 주요 쟁점으로 다뤄지는 모습이었다. 구체적으로 환경영향평가 및 허가를 사유로 한 경우가 정부 소송 사례 중 33.3%(295건)를 차지했고, 이어 온실가스 감축 및 거래 26.0%(231건), 인권 19.5%(173건), 무역·투자 5.3%(47건), 생물다양성과 생태계 보호 5.2%(46건), 에너지·전력 4.4%(39건), 정보 접근권 2.4%(21건), 기후변화 적응 실패 1.5%(13건), 정의로운 전환 1.4%(12건) 등 순이었다.

정부 외(326건·법원 자문 요청 포함)에는 대부분이 기업 소송으로 모두 239건(73.3%)이 진행됐다.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 산하 그랜섬 기후변화연구소는 사빈센터 자료를 토대로 작성한 ‘세계 기후소송 동향 2024 스냅샷’ 보고서에서 기업 소송에 대해 “최근 몇년 동안 ‘기후워싱’(기업이 실상은 그렇지 않으면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활동을 하는 것처럼 홍보하는 것)과 관련된 소송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며 “오염자 부담 소송에서도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 현재(2023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 30건 이상의 소송에서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기후 관련 피해에 대한 기후 책임을 묻는 소송이 진행 중”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기후소송의 ‘칼날’이 실제 기업의 재무 성적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실증적 연구도 최근 나온 터다. 지난해 11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서스테이너빌리티’에 발표된 연구 ‘기후소송이 기업 가치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2005∼2021년 미국·유럽 상장 기업 대상으로 한 기후소송 108건을 분석한 결과 소송 제기나 불리한 편결 이후 기업 주가가 평균 0.41% 떨어졌다고 평가됐다. 세계 주요 화석연료 생산기업 등 탄소집약적 기업은 그 영향이 더 커 소송 제기 시 평균 0.57%, 불리한 판결이 나올 경우 1.50% 주가가 하락한 것으로 측정됐다. 

 

◆“정치·행정에 맡겨놓을 수만 없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8월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와 관련해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탄소배출 감축 목표에 관해 정량적 수준을 어떤 형태로도 제시하지 않았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정부가 기본권 보호 의무를 위반해 미래세대의 환경권을 침해한단 판단이었다. 사법부가 이런 식으로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에 대해 제동을 건 사례는 네덜란드, 독일, 아일랜드, 스위스 등 손에 꼽는 정도로 우리나라가 유럽 대륙 밖에서는 최초라고 한다. 

 

이런 특별한 사례 때문에 가려진 측면이 있지만, 사실 국내 기후소송은 법원이나 정부기관에서 대개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임두리 기후솔루션 리걸팀장은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다뤄지는 기후소송 건수가 절대적으로 적다”며 “EU(유럽연합)만 해도 소송 건수가 많고 성공이 축적됐기 때문에 유효한 전략을 채택하는데 유리하지만 한국은 아직 그 정도 판례가 축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후솔루션과 청년 원고가 지난달 6일 한국가스공사 서울지역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프리카 모잠비크 가스전 투자 금지 가처분 소송 계획을 밝히고 있다. 기후솔루션 제공

배출량 감축의 핵심 고리인 전력 문제를 다루는 경우에는 소송을 제기하는 쪽이 사안의 ‘당사자’가 아니란 점이 발목을 잡는다고 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 5월 기후솔루션은 PPA(전력구매계약) 제도와 관련해 전력망 이용료의 불투명한 산정을 바로잡기 위해 한국전력공사를 공정거래법 위반(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혐의로 공정개래위원회에 신고했다. 당시 소송을 하지 않고 ‘공익 신고’ 절차를 밟은 건 결국 기후솔루션이 PPA 제도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사건을 맡았던 김건영 변호사는 “소송과 달리 신고였기 때문에 공정위를 통해 한전의 자료제출 명령을 요청할 수 없었고 정보 또한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 신고는 올 1월 공정위가 무혐의로 종결했다. 

 

기후소송의 낮은 승률은 자연스러운 것이란 의견도 있다. 기후 헌법소원 공동대리인단에 참여하기도 했던 윤세종 플랜1.5 변호사는 “법률 수준에서, 기후변화와 관련한 문제는 보통 어떤 조항을 어겨서 발생하기보다는 법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 문제가 지속되는 경우”라며 “기후소송이 이기기 어려운 건 너무나 당연하다. 결국 입법부나 행정부가 규율을 충분히 만들지 않아서 시작된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입법부·행정부의 ‘공백’은 다시금 우리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과 같은 최고 사법기관의 개입 이유가 되기도 한단 게 윤 변호사 설명이다. 그는 “기후변화 피해가 현재 정치적 소수자인 미래세대에게 집중되는 상황에서 정치·행정에 모든 걸 맡겨둘 수 있느냐는 질문에 사법부가 계속 맞닥뜨리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다만 사법부의 ‘결단’이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기후소송에 쓸모가 없는 건 아니다. 전략적 성격이 강한 기후소송의 진짜 목표는 ‘승소’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정책·제도의 개선, 일반 대중의 인식 제고 등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최근 청소년 원고 10명의 포스코 대상 전남 광양 제2고로 개수(설비 교체) 중지 민사소송을 대리 중인 김예니 기후솔루션 변호사는 “기후소송이 공론장에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청소년, 노년층의 목소리를 모아내기도 한다”며 “이들 당사자 의견에 법적, 과학적 근거가 합쳐지면서 법정 밖에서 정책 진전을 이끄는 경우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3월 노년 기후운동단체 ‘60+기후행동’이 기후위기로부터 노인의 생명권을 보호해야 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한 경우가 그런 사례다. 인권위는 ‘구체적이고 개별적 인권 침해’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진정을 각하했지만, 노인 등 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 필요성엔 공감해 후속조치 준비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 결과 지난해 12월 인권위 상임위원회에서 관련 안건을 의결했고 환경부 장관에게 관련 법 내 기후위기 취약계층 정의 명시와 보호 의무 규정을 권고했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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