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정부의 인공지능(AI) 반도체 대중국 수출 통제 강화 직후 베이징을 방문했다. 그는 민감한 시기에 중국을 찾아 주요 전략 시장으로서 중국의 중요성을 직접 강조하고 현지 주요 인사들과 연쇄 회동을 가졌다.

17일 중국중앙(CC)TV에 따르면 황 CEO는 중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CCPIT) 초청으로 이날 베이징에 도착해 런훙빈(任鴻斌) CCPIT 주석과 회담했다. 황 CEO는 “중국은 엔비디아에 매우 중요한 시장”이라며 “앞으로도 협력을 이어가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미국 상무부의 수출 제한 조치는 이미 엔비디아 사업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토로했다.
황 CEO는 “엔비디아는 지난 30년간 중국 시장과 함께 성장해 왔다”며 “중국은 세계 최대 소비시장 중 하나일 뿐 아니라, 역동적인 산업 생태계와 선도적 소프트웨어 능력은 우리의 혁신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원천”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규제 요건에 맞는 제품 시스템 최적화에 지속 투자할 것이며, 중국 시장에 흔들림 없이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AI는 의료, 금융, 기후과학, 제조 등 전 산업의 구조를 바꾸고 있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AI 산업의 파괴적 혁신 가능성을 역설했다.
황 CEO는 이날 저녁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허리펑(何立峰) 국무원 부총리를 만나 중국 시장과의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허 부총리는 “중국은 투자와 소비 잠재력이 크고, 기술 혁신에 최적화된 환경을 갖추고 있다”며 “엔비디아를 비롯한 미국 기업들이 중국 내 산업 우위를 발휘해 글로벌 경쟁에서 기회를 잡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황 CEO는 “중국 경제 전망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으며, 미·중 경제협력 확대를 위해 적극 역할을 하겠다”고 화답했다.
황 CEO는 이번 방중 기간 중 중국 대표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의 량원펑(梁文峰) 대표 등 자사 고객들과도 만나 신규 반도체 설계 방향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엔비디아가 중국 파트너들을 위해 H20 칩을 넘어선 차세대 칩 설계 방안을 조율 중이라고 보도했다.
황 CEO의 중국 방문은 지난 1월 이후 석 달 만이다. 당시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시작을 앞두고 대만과 중국 엔비디아 지사를 잇따라 방문했으며, 베이징 춘제(중국의 설) 행사에서 AI 관련 연설을 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에는 불참했다.
이번 방중은 트럼프 정부가 H20 칩의 중국 수출에 처음으로 제재를 적용한 가운데 이뤄졌다. 엔비디아는 지난 9일 미국 정부로부터 “H20 수출 시 사전 허가가 필요하다”는 통보를 받았고, 14일에는 “무기한 적용된다”는 최종 통지도 받았다고 밝혔다. 미 정부는 H20 칩이 슈퍼컴퓨터에 전용될 가능성을 제재의 근거로 들었다.
H20은 원래 엔비디아가 미 정부의 수출 규제를 피해 설계한 모델이다. 기존 주력 제품인 H100보다 성능은 낮지만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장착해 일부 기능이 강화됐고, 중국 고객에게 공급 가능한 최고급 AI 칩으로 평가받아 왔다. 딥시크가 지난 1월 발표한 AI 모델 학습에도 H20이 사용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이던 2022년부터 국가 안보를 이유로 첨단 반도체의 대중국 수출을 규제해 왔으며, 트럼프 정부는 그 대상을 H20 칩까지 확대한 상태다. AI를 둘러싼 미·중 간 기술 주도권 경쟁이 한층 격화되는 가운데 황 CEO의 이번 방중은 엔비디아의 입장을 조율하고 중국 내 기반을 재정비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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