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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지 마!” 아이보다 더 움찔하는 부모들… 조마조마한 육아의 집 [육아동네 리포트③]

입력 : 2025-04-19 10:00:00 수정 : 2025-04-18 15: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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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 민원 10년 새 50배↑…소리로 바뀌는 3040의 주거 선택
바닥 매트, 1층 이사, 단독주택까지…육아의 소리를 줄이는 가족들

 

편집자주|‘육아동네 리포트’는 어린 자녀를 키우는 3040 부모들의 삶과 선택을 따라갑니다. 아기 울음 한 번에 바뀌는 집, 거리, 인생의 궤도까지. 변화의 중심에 선 가족의 이야기를 8주에 걸쳐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온라인을 통해 전해드립니다.

 

지난달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퇴근 후 현관문 앞에 붙은 메모를 본 정민수(38)씨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이가 자꾸 뛰는 소리가 납니다. 조용히 시켜주세요’

 

서울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은 층간소음 관련 공지문. 야간 시간대 발생하는 발망치 소리와 문을 세게 닫는 소음에 대한 민원이 잦아지며, 관리사무소가 주민들에게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

 

익명의 쪽지는 단순한 부탁이라기보다 경고처럼 느껴졌고, 그날 저녁 그는 세 살배기 아들에게 처음으로 “그만 뛰어!”라고 소리쳤다. 정씨는 “그날 이후 아기가 조금만 소리를 내도 내가 더 긴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거실에 10만원 넘는 층간소음 매트를 깔았고, 아이 방은 발이 닿을 때마다 진동을 흡수하는 러그로 채웠다. 그는 “공동주택에서 소음발생은 사과는 해야 할 일이지만, 아이가 크는 소리까지 죄송해야 하는 건지 가끔 헷갈린다”라고 말했다.

 

아이 발소리를 줄이기 위해 두툼한 층간소음 매트를 깐 거실. 소리보다 ‘불편함’에 더 민감해진 부모들은 집 안 구조와 바닥재 선택에까지 신경을 쓴다.

 

요즘 부모들은 집을 고를 때 ‘누가 뛰는가’보다 ‘그 소리를 누가 듣는가’를 먼저 생각한다. 소음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아이를 키우는 죄책감과 불안을 자극한다. 그래서 집은 이제 소리를 감추고 마음을 지키는 피난처가 된다.

 

19일 한국환경공단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화상담만 3만3000여건 방문상담 및 소음측정까지 포함하면 7100건이 넘었다. 2012년 전체 접수 건수가 1800건 남짓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10년 만에 소음 민원은 50배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센터 상담원은 “상담 전화를 주시는 분들은 대부분 소음을 듣고 있는 세대”라며 “아이가 있는 집이 먼저 신청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다”라고 말했다. 다만 “영유아 자녀를 키우는 30~40대 가구에서도 혹시 자기 아이의 소음으로 피해를 줄까 걱정돼 먼저 신청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결국 ‘듣는 이의 불편’은 ‘내 아이가 폐가 될까’ 하는 부모의 불안으로 이어졌고 주거 결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층수부터 위치까지 주거 환경을 다시 설계한다.

 

서초구의 한 신축 아파트 1층으로 이사 온 이모(35)씨 부부는 “윗집에 폐 끼치는 것도 싫고 아이 혼내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아예 1층으로 내려왔다”라고 말했다. 남들보다 불편한 점은 많지만 선택에 후회는 없다. 그는 “아이 목소리에 움찔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언젠가는 올지를 그걸 생각하면 잘한 선택 같다”라고 말했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최보미(35·여)씨는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거실 바닥 시공 여부를 두고 며칠을 고민했다. 최씨는 “발소리도 커지고, 자주 넘어지는데 아래층에 피해 줄까 걱정되더라”라며 “인터넷도 찾아보고 친구들도 물어봤지만, 뭔가 확신은 안 섰다”라고 말했다.

 

결국 두툼한 층간소음 매트를 깔았다. 그는 “완벽하진 않아도, 아이를 덜 혼내게 됐다. 그게 제일 크다. 우리 집 분위기가 조금은 편안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 남양주로 이사 온 김도영(37)씨는 둘째 출산 후 층간소음 민원에 시달리다 결국 단독주택을 택했다. 김씨는 “아파트에선 ‘아이를 키우는 게 죄’처럼 느껴졌다”라며 “울어도 눈치, 뛰어도 눈치.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수도권의 한 단독 주택 단지. 일부 부모들은 층간소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파트를 떠나 1층 또는 단독주택을 선택하기도 한다.

 

외곽이고 불편한 점도 많지만, 마음은 훨씬 가볍다. 그는 “소리를 줄이는 게 아니라, 미안함을 덜 수 있는 구조를 찾았다”라며 “아이가 뛰어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집이 필요했다”라고 전했다.

 

층간소음 문제를 줄이기 위한 시도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최근에는 건설사들도 층간소음 저감을 위한 기술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실제 아파트 현장에서의 적용을 통해 기술 효과를 지속 검증하고 있으며, 향후 성능 인증을 마친 기술부터 점진적으로 현장에 확대 적용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국토교통부는 층간소음 저감을 위해 바닥 슬라브 두께를 210㎜ 이상으로 권고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이보다 얇게 시공된 아파트가 많다. 2023년 기준, 슬라브 두께 210㎜ 이상을 충족한 단지는 전체의 56% 수준에 불과해 구조적 차원에서의 개선 필요성이 제기된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육아기 부모들은 현실적인 이유로 집을 매입할 땐 고층을 선택하면서도, 실제 거주에선 1층을 필요로 하는 이중적인 주거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1층에 대한 수요는 육아라는 특정 시기에 국한되는 만큼 매매보다 임차로 몰리는 경향이 뚜렷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청약 제도상 육아 가구나 장애인을 위한 저층 우선 공급 제도가 있더라도 추후 매도를 고려하면 쉽게 선택하기 어렵다”며 “그 결과, 고가의 층간소음 매트 시공 등으로 사회적 비용이 이전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공동주택 구조 특성상 소음과 진동의 영향은 사라질 수 없으며, 단순히 주민 간의 타협에 맡기기엔 한계가 있다”면서 “앞으로는 건축 기술을 통한 구조적 해법이 더 적극적으로 도입돼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다음편 예고|아이가 아직 안 아파도, 부모들은 미리 준비합니다. 요즘 3040 부모들은 어린이집보다 소아과, 학교보다 응급실을 먼저 검색합니다. 다음 주 ‘육아동네 리포트’에서는 ‘혹시 모를 밤’을 걱정하며 주거를 설계하는 부모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글·사진 양다훈 기자 yangb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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