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수험생은 솔직히 운이 좋았던 거죠.” 올해 자녀가 고3인 A씨는 2026학년도 모집인원이 다시 3058명으로 줄어든다는 소식에 낙심한 분위기였다. A씨의 자녀는 의대에 지원할 정도의 성적은 아니다. 하지만 의대 모집인원은 A씨에게도 ‘중요한’ 정보였다. 의대 모집인원이 약대나 한의대 등 의약학계열을 넘어 상위권 대학 자연계열 입시까지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A씨는 “올해 수험생 입장에선 상위권 대학 자리 1500개가 갑자기 사라졌다고 여겨진다. 증원 약속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아쉬운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이 증원 전 수준인 3058명으로 발표되면서 올해 수험생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의대를 목표로 하던 최상위권은 물론 다른 학과를 지망하던 상위권 학생들까지 전반적으로 대학 진학이 어려워졌다고 느끼는 상황이다. 올해 고3이 이례적으로 예년보다 늘어난 점도 불안을 키우는 요인이다.

◆수험생 늘었는데 의대 선발은 감축
19일 교육계에 따르면 올해 고3 학생 수는 45만3812명으로, 전년(40만6079명)보다 11.8%(4만7733명)가 늘었다. 이는 통합수능이 도입된 2022학년도 이후 가장 많은 규모다.
고3 학생 수는 2022년 44만6573명에서 2023년 43만1118명, 2024년 39만4940명으로 매년 줄다가 작년에만 1만명가량 소폭 올랐는데, 올해는 증가 폭이 이례적으로 크다.
올해 고3이 많은 것은 이들이 출생률이 ‘반짝’ 상승했던 2007년생 ‘황금돼지띠’이기 때문이다. 수험생 입장에선 작년보다 경쟁자가 4만명가량 늘어난 상황인데, 여기에 N수생을 더하면 올해 대입을 준비하는 수험생 수가 2001학년도 이후 가장 많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의대 모집인원 축소는 수험생들에겐 또 다른 ‘악재’다. 의대 정원은 2024학년도 3058명으로 2025학년도부터 5058명으로 2000명 늘었는데, 실제 2025학년도 모집인원은 4565명이었다. 의대 증원을 둘러싼 갈등이 깊어지자 9개 거점국립대가 증원분의 50%만 뽑기로 결정하면서 결과적으론 전년보다 1507명만 더 뽑았다.
2026학년도에는 증원분 1507명이 다시 사라졌다. 교육부는 의대생들의 수업거부가 3학기째 이어지자 2026학년도에 한해 의대 모집인원을 증원 전 수준인 3058명으로 되돌리겠다고 17일 발표했다. 당초 늘어난 정원인 5058명까지 뽑았을 때와 비교하면 2000명 줄어든 규모다.
◆올해 입시 더 치열…수험생 심란
증원된 의대 정원만 믿고 입시를 준비 중이던 수험생들은 허탈할 수밖에 없다. ‘피라미드’ 구조인 대입 특성상 의대 모집인원은 다른 대학의 합격선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2025학년도 고려대 자연계열(의예과 제외) 전체 모집인원은 1800명가량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험생들에게는 자연계열에서 상위권 학교 하나가 사라진 것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
수험생 학부모 B씨는 “작년 같으면 의대에 갔을 1500명이 그대로 밑으로 내려온다는 것 아니냐”며 “약대나 한의대, 수의대, 서울대 자연계열 등으로 쭉 여파가 미치니 결국 상위권 학생들 전부가 영향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입시업계들은 올해 대입 경쟁이 작년보다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만기 유웨이교육평가연구소장은 “의대 선발이 1500명 줄고, 고3은 4만 명 증가해 수치상으로만 봐도 의대 정시·수시 모두 ‘역대급 경쟁’을 예고한다”고 내다봤다.
이 소장은 “수능 응시자 수 자체가 늘어나 정시 지원자 풀이 커지고, 의대·약대·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자연계열의 정시 경쟁률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며 “수학·과탐에서 상위권 밀집도가 높아질 경우, 작은 차이로도 당락이 결정될 여지가 크다”고 분석했다.
이어 “2025학년도 의대 증원 소식에 ‘기회 확대’를 기대하며 응시한 수험생들이 대거 재수를 선택했을 가능성이 있는데, 2026학년도에 증원이 철회돼도 이들 중 다수가 여전히 의대를 노려 의·치·한 계열 경쟁 강도가 높아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소장은 “의대 정원이 줄며 상대적으로 ‘플랜B’로 선택되는 고소득 유망 이공계 학과의 선호도가 오를 수 있다"며 “의대 지망 성향이 강한 자연계 상위권 중 일부나 차상위권 이과 학생은 약대, 수의대, 간호대 등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입시 불안정…사교육 컨설팅 늘듯
17일 의대 모집인원이 발표된 뒤 수험생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혼란스럽다는 글이 잇따랐다. 약대를 준비하며 재수 중이라는 한 수험생은 “의대 선발이 줄어 약대로 돌리는 수험생이 많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수험생은 “의대 증원 약속을 믿고 있었는데 수시 지원이 몇달 안 남은 상황에서 갑자기 이러니 당황스럽다”며 “이러다 내년에 다시 의대 모집인원이 늘면 올해 수험생만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입시업계도 입시 불안정성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병진 이투스교육평가연구소장은 “수험생들의 대입 지원에서 기초가 되는 것은 전년도 결과인데 모집인원의 변화로 2025학년도 지원 경향을 2026학년도에 적용하기 어려워졌다”며 “2025학년도 입결을 활용하지 못하고 근거 없는 지원을 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김 소장은 “의대 모집인원만 보면 2024학년도 입결을 보고 지원 전략을 구상하는 방법도 있으나 최상위 모집 단위인 의대로부터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는 일반 모집 단위는 2025학년도부터 신설된 ‘무전공 모집 단위’란 변수가 있어 2024학년도 입결을 활용하는 데 어려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2025학년도와 2024학년도 입결을 모두 검토하면서 무전공의 영향을 살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현 고2, 고1은 의대 모집인원이 또 변할 수 있다는 점도 변수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현 고1·2는 의대 정원 변수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고1은 대입이 완전히 개편되고, 고2는 통합수능 마지막 대상 학년이란 점과 입시 불안, 불확실성 모두 커지는 상황”이라며 “고 1·2·3학년 모두 입시 불안정성이 커졌다”고 밝혔다.
올해 수험생들의 혼란이 커 사교육 컨설팅이 늘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만기 유웨이교육평가연구소장은 “2025학년도 입시에서의 ‘실패 경험’을 피하려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며, 전략적 지원, 내신 관리, 학종 활용 등에 대한 컨설팅 의존도 증가가 예상된다”며 “예측 불가한 요인이 늘어남에 따라, 수험생·학부모의 불안 심리가 증가하고, 컨설팅 수요가 늘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전날 브리핑에서 수험생이나 학부모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정말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수험생과 학부모를 위해 최대한 신속하게 결정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고려 요인이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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