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이 6년 임기를 마치고 18일 퇴임했다. 두 사람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재판관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맡았던 문 재판관은 이날 퇴임사에서 “헌재 결정에 대한 학술적 비판은 당연히 허용되어야겠지만, 대인논증(對人論證) 같은 비난은 지양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대인논증이란 논리를 따지지 않고 인격이나 경력, 사상 등을 지적하면서 범하는 오류를 뜻하는데 헌재 결정에 대한 존중을 강조한 것이다. 이미선 재판관도 “국가기관은 헌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짧은 퇴임사로 소회를 밝혔다.

두 사람의 퇴임으로 헌재는 당분간 9인 체제가 아닌 7인 체제로 운영될 전망이다.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 국무총리가 이들 후임자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명했지만, 헌재에서 지명 행위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을 인용 결정한 탓이다. 과거에도 헌재 9인 체제는 자주 허물어졌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헌재재판관 구성에 영향력을 행사한 탓이다. 2011년 조대현 당시 재판관 후임 인선을 두고 여야 갈등으로 14개월간 공석 사태를 빚었다. 2018년엔 재판관 5명이 한꺼번에 퇴임하면서 한 달간 공백이 이어졌다. 지난해 10월 17일에는 국회 몫 재판관 3명이 퇴임했으나 국회가 2개월 이상 추천을 미적거렸다. 국민 눈에 ‘헌재재판관=정략적’이란 이미지가 덧씌워질 수밖에 없다.
헌재는 정파적 행태로 스스로 국민 불신을 키웠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안을 기각하긴 했지만, 찬반 의견이 4대4로 쫙 갈렸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이 이 위원장을 취임 이틀 만에 정략적으로 탄핵소추했음에도 진보 성향 재판관 4명은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다. 윤 대통령 탄핵 선고에서 재판관 만장일치를 이룬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국민 가운데는 여전히 헌재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일부 보수단체는 ‘헌재 해산’까지 주장하는 판이다. 헌재에 대한 신뢰도가 50% 초반으로 하락했고, 불신한다는 응답이 45%에 육박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었다.

헌재가 제 기능을 하려면 개인 능력 이전에 재판관의 정파성이 옅어야 한다. 재판관 9명 중 5명을 진보 성향인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민변 출신으로 채웠던 문재인 정권 때와 비할 바는 아니나 지금도 헌재재판관들의 이념 지향성은 확연히 구분된다. 헌재는 헌법 수호를 위한 보루다. 더는 고질적인 정파 논란과 국민 불신을 방치해서는 안될 일이다. 헌법은 재판관 9명을 대통령·대법원장·국회가 각각 3명씩 지명한 뒤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권력 분립의 의미가 담겨 있지만, 실상은 이념과 정파로 갈려 자기 사람 심기에 여념이 없다. 차기 정부 몫이긴 하나 헌재 구성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재판관 임명 방식 개편을 검토해야 한다. 사법의 정치화를 막는 길이다. 더 미루다가는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이 무너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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