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소비뇽블랑 제국’ 킴 크로포드 세운 에리카 인터뷰/와이너리 매각하고 2013년 오가닉 와인 빚는 ‘러브블럭’ 설립/이산화황 대신 녹차 탄닌으로 산화 방지/떼루아·품종 개성 그대로 담는 와인 만들어

잘 익은 복숭아와 만다린. 달콤한 바질의 허브향. 그리고 짭조름한 미네랄까지. 보통 날카로운 산도와 풀향이 강한 일반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과는 결이 다르네요. 역시 소비뇽블랑 마스터 답군요. 직선적이고 단순한 소비뇽 블랑을 어떻게 이처럼 다양한 과일향이 어우러지고 섬세하면서도 복합미 넘치도록 만들 수 있을까요. 비밀은 바로 ‘녹차 탄닌’이랍니다. 소비뇽 블랑 제국을 건설한 킴 크로포드가 이산화황 대신 녹차 탄으로 빚는 오가닉 와인, 러브블럭 (Loveblock)을 만나러 뉴질랜드 말보로와 센트럴 오타고로 떠납니다.


◆양날의 칼 So2
와인을 병입할때 많은 와이너리들이 이산화황(So2)를 사용합니다. 와인에는 다양한 미생물이 존재할 수 있는데 So2가 유해한 효모, 박테리아, 곰팡이의 성장을 억제해 와인의 품질을 잘 보존하기 때문입니다 또 산화를 막기 위해서도 So2를 사용합니다. 포도를 수확할때도 So2가 사용됩니다. 포도는 수확과 동시에 산화가 시작될 수 있어서 양조시설로 신선하게 포도를 옮기기 위해 So2를 뿌립니다. 또 발효를 마친 포도즙에도 산화를 막기 위해 So2를 사용합니다.

이처럼 와인 양조때 생각보다 광범위하게 So2가 사용됩니다. 와인양조에서 So2 사용은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So2에 민감한 사람들에게는 두통, 메스꺼움, 알레르기, 호흡기 질환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에 나라마다 So2 잔량의 허용치를 규정합니다. 오가닉이나 바이오다이다믹 생산자는 So2를 아예 사용하지 않거나 허용치보다 훨씬 더 적게 씁니다. 특히 일부 생산자들은 So2가 와인이 지닌 포도 본연의 과일향, 꽃향, 허브향 등 섬세한 아로마와 테루아의 특성을 드러내는 것을 방해한다고 판단해 So2 사용을 최소화합니다.

So2 사용량 허용 기준은 국가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국제와인기구(OIV)의 권고를 따릅니다. 총 이산화황 기준으로 레드 와인은 150mg/L, 화이트 및 로제 와인은 200mg/L(잔당 4g/L 이하 기준)이며 스위트 와인(45g/L 이하) 은 300~400 mg/L입니다. 유럽연합(EU) 국가들은 이 기준을 따릅니다. EU 오가닉 와인 인증 일반 와인보다 훨씬 더 엄격합니다. 드라이 레드 와인은 최대 100mg/L, 드라이 화이트 및 로제 와인 최대 150mg/L(잔당 2g/L 이하 기준)입니다.
미국은 일반 와인 350ppm으로 OIV 권고 기준 보다 관대하지만 오가닉 인증 와인은 EU보다 더 엄격합니다. 첨가된 SO₂가 아예 없어야 하며 자연적으로 생성된 SO₂조차 10ppm 이상이면 ‘오가닉’ 라벨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녹차 탄닌으로 떼루아·품종 캐릭터 고스란 살려
이런 So2 대신에 녹차 탄닌에서 답을 찾은 와이너리가 ‘소비뇽 블랑의 제국’ 킴 크로프드(Kim Crawford)를 창업한 킴 크로포드와 아내 에리카가 2013년 설립한 러브블럭(Loveblock) 입니다. 한국을 찾은 에리카와 함께 러브블럭의 매력을 들여다봅니다. 러브블럭은 콤마와인에서 수입합니다. 대표 와인은 러브블럭 티. 신선한 레몬, 라임으로 시작해 잘 익은 복숭아, 만다린이 더해지고 잔을 흔들면 흰후추향과 달콤함 바질의 허브향이 피어오릅니다. 토양에서 얻은 미네랄도 잘 느껴집니다.

어떻게 So2 대신 녹차 탄닌을 활용할 생각을 했을까요. “So2를 안쓰면 와인이 산화되기 쉬어요. 특히 소비뇽블랑은 껍질이 얇아 귀부균(Botrytis cinerea) 감염이 잘되는 품종입니다. 귀부균이 포도에 침투하면 라카아제(Laccase)가 생성됩니다. 이 효소는 페놀 성분을 산화시켜 와인에 견과류향, 버섯향, 건과일 아로마 등 복합미를 만듭니다. 하지만 너무 많으면 와인의 맛을 변질시켜 산화취가 생기거나 브라운 컬러로 와인이 손상됩니다. 그래서 많은 생산자들이 So2를 쓸 수 밖에 없어요. 하지만 오가닉 인증을 받으려면 제초제, 살충제 사용은 물론 So2 사용량도 큰 규제를 받습니다. 그래서 So2 대신 녹차 탄닌을 고안해 냈죠. 녹차에서 추출한 탄닌 성분이 산화 방지 역할을 한답니다. 어떻게 고안해냈냐구요? 녹차 상품 설명서에 적혀있더군요. 하하하”


에리카는 So2 대신 녹차 탄닌을 사용하면 소비뇽블랑의 탄닌과 산도가 훨씬 부드럽고 아로마도 더 많이 뽑아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So2가 소비뇽블랑의 날카로운 산미를 강하게 만들지만 So2를 사용하면, So2를 사용하지 않고 만든 소비뇽블랑이 지닌 매력적인 맛과 향을 다 없애 버리더군요. 하지만 녹차 탄닌은 So2를 사용하지 않을때와 비슷한 아로마를 지녀 떼루아와 품종 캐릭터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점이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답니다.”
에리카는 이에 찻잎의 탄닌을 추출해 파우더로 만드는 공정을 특허내고 회사까지 설립합니다. 루이보스, 허니보스 등 다양한 차를 활용해봤는데 포도에 가장 적합한 탄닌이 녹차라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항산화 능력이 가장 뛰어난 에피갈로카테킨(EGCG) 성분이 주로 녹차에 존재합니다.


◆센트럴 오타고에서 빚는 피노누아
말보로 주요 생산지는 와이라우 밸리(Wairau Valley), 아와테레(Awatere Valley)입니다. 와이라우 밸리는 순수한 과일향과 바디감이 특징이고 남쪽이라 더 시원하고 건조한 아와테레는 향이 뛰어난 피노누아와 소비뇽블랑이 국제적으로 큰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킴과 에리카가 러브블럭을 일굴 당시 와이라우는 밸리는 이미 유명한 상태라 땅값이 크게 비쌌고 이에 덜 주목받던 아와테레의 땅 115h를 사들여 포도밭을 일굽니다. 와인 역사가 50~60년에 불과한 뉴질랜드는 일할 사람이 없어 기계가 들어가 일하기 편하게 네모 모양으로 포도밭을 만들었는데 이를 블럭이라 부릅니다. 와이너리 이름을 여기서 가져왔습니다.

레이블에는 태양, 달, 별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야생 민들레를 그려 넣어 자연을 지키는 오가닉 와인을 강조합니다. 황금색 꽃은 매일 생성되는 에너지를 통해 생명과 성장을 가져오는 태양을 상징합니다. 흰색 씨앗이 모여있는 둥근 머리는 달의 주기를 상징하며, 지구상의 모든 것에는 성장과 쇠퇴의 자연적인 주기가 있다는 사실을 담았습니다. 흩어지는 씨앗은 별을 상징합니다.
러브블럭 피노그리는 잘 익은 멜론, 배로 시작해 카모마일의 허브향이 더해집니다. 젖은 돌의 미네랄이 도드라지고 생기발랄한 산미는 직선적으로 다가오며 복합미가 긴 여운을 남깁니다. 오가닉 농법은 포도나무 주변에는 야생화 풀을 많이 심는데 이유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자연적으로 당도가 많이 오르지 않은 상태에서도 줄기와 껍질에 탄닌이 풍성하게 형성돼 알코올도수가 높지 않으면서도 아로마 풍성한 와인을 만들 수 있습니다.


러브블럭 소비뇽블랑은 신선한 복숭아로 시작해 온도가 오르면 파파야향이 더해지고 바질의 허브향과 지푸라기향이 기분 좋게 비강으로 파고듭니다. 짭조름한 미네랄이 돋보이고 생기발랄한 산도가 뒤를 잘 받쳐줍니다. 포도즙 일부는 중성 프렌치 오크에서 발효하고 50%는 젖산발효를 진행해 날카로운 산미를 다소 부드럽게 만듭니다.

러브블럭 피노누아는 뛰어난 피노누산지로 요즘 유명해진 센트럴 오타고 피노누아로 만듭니다. 잘 익은 레드체리, 블랙 체리, 검은 자두로 시작해 제비꽃향이 더해집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숙성향인 버섯향과 은은한 오크향도 더해집니다. 5일 동안 저온 침용한 뒤 포도즙의 온도를 올려 자체 야생효모로 발효하고 젖산발효도 자연스럽게 진행되도록 둡니다. 일부는 오크통에서 8개월 숙성합니다.

◆소비뇽블랑 제국 일구다
소비뇽블랑을 좋아한다면 킴 크로포드(Kim Crawford)를 한번쯤은 마셔봤을 겁니다. 가성비 소비뇽블랑의 대명사로 Nielsen, IRI 같은 시장 조사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오랫동안 소비뇽 블랑 판매 1위를 달립니다. 특히 소비자가 15~20달러 가격대에서의 프리미엄 소비뇽 블랑 시장에서는 독보적인 존재입니다. 킴 크로포드는 뉴질랜드의 유명 와인 메이커이던 킴 크로포드와 아내 에리카가 1966년 세운 와이너리입니다. 포도밭과 양조시설이 없이 포도밭을 계약 재배하고 양조시설을 빌려 만든 킴 크로포드를 7년 만에 뉴질랜드에서 수출 순위 10위에 드는 큰 와이너리로 성장시켰다니 대단한 사업수단입니다. 배럴에서 1년 이상 숙성해야 하는 다른 포도 품종과는 달리 생산 후 1년 이내에 판매가 가능해 즉시 환금성이 가능한 소비뇽블랑을 선택한 것이 ‘신의 한수’였습니다.

2003년 킴과 에리카는 와이너리를 캐나다의 빈코르 인터내셔날(Vincor International)에 매각했고 3년후 세계적인 음료 대기 콘스텔래이션 브랜즈(Constellation Brands)가 다시 킴 크로포드를 인수합니다. 킴은 2007년, 에리카는 2009년까지 콘스텔래이션에서 일했고 매각 대금과 성과 보수로 5000만달러(약 712억원)의 거액을 챙깁니다. 킴과 에리카는 이 자금으로 새 프리미엄 와인 프로젝트에 돌입했고 2013 오가닉 와인을 빚는 러브블럭이 탄생합니다.
최현태 기자는 국제공인와인전문가 과정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레벨3 Advanced, 프랑스와인전문가 과정 FWS(French Wine Scholar), 부르고뉴와인 마스터 프로그램, 뉴질랜드와인전문가 과정, 캘리포니아와인전문가 과정 캡스톤(Capstone) 레벨1&2를 취득한 와인전문가입니다. 2018년부터 매년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최대와인경진대회 CMB(Concours Mondial De Bruselles) 심사위원, 2017년부터 국제와인기구(OIV) 공인 아시아 유일 와인경진대회 아시아와인트로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소펙사 코리아 한국소믈리에대회 심사위원도 역임했습니다. 프랑스 보르도, 부르고뉴, 상파뉴, 루아르, 알자스와 이탈리아, 포르투갈, 호주, 독일, 체코, 스위스, 조지아,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와이너리 투어 경험을 토대로 독자에게 알찬 와인 정보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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