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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과 용서, 고요한 전율을 보여준 유니버설발레단의 ‘지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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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4-20 08:46:18 수정 : 2025-04-20 09: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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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바!” “브라비!”

 

알브레히트가 몸으로 절규하며 공연이 끝나자 객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갈채는 오페라극장의 두터운 커튼을 거세게 두드렸고, 무용수들은 서너 번 무대로 불려 나와 인사했다. 유니버설발레단은 4년 만에 무대에 올린 ‘지젤’을 통해 고전 낭만발레의 진수와 발레단 역량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유니버설발레단 ‘지젤’ 2막에서 파드되를 추고 있는 지젤 홍향기와 알브레히트 역의 전민철. 유니버설발레단 제공(김려원 작가)

18일 첫 공연을 책임진 지젤 역의 홍향기는 군더더기 없는 테크닉과 균형 잡힌 감정선으로 관객을 몰입시켰다. 그녀는 발레리나가 어떻게 이야기꾼이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며, 사랑의 환희와 배신, 광기에서 용서에 이르는 감정의 곡선을 빈틈없이 그려냈다.

 

파트너 알브레히트 역의 전민철은 아직 미완의 선율을 품은 젊은 귀공자 그 자체였다. 1막에서는 풋풋한 사랑의 설렘을, 2막에서는 비극의 무게를 떠안은 절절함을 표현했다. 특히 2막에서 에너지를 발산했는데 마지막에 윌리에게 영혼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펼쳐진 앙트르샤(양발끝을 교차하는 도약)는 많은 박수를 받았다. 객석을 향한 독백 같은 도약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공연의 정점은 역시 알브레히트와 지젤의 2인무였다. 알브레히트의 팔 위로 가볍게 떠오른 홍향기의 몸은 공중을 부유하는 듯했다. 살아 있는 존재보다도 더 투명한 존재로서 정령의 모습을 보여줬다.

 

윌리들의 군무도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완벽하게 정렬된 라인, 한 줄기 달빛처럼 부드럽게 흐르는 팔 동작, 그리고 춤 사이사이 배어든 음울한 서정성은 관객의 숨마저 앗아갈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단지 배경이 아닌, 서사의 또 하나의 주체로서 비극의 깊이를 더했다.

 

1막의 전원 풍경은 생생하게 표현됐고, 특히 패전트 6인무는 아름다웠다. 여섯 명의 무용수는 경쾌하고 유려한 동작으로 무대를 가로지르며, 마치 봄바람이 마을을 지나가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동작 하나하나가 선명하고 리드미컬하게 맞아떨어지면서도 각 무용수가 가진 개성이 드러났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들의 무대는 이후의 비극적 전개와 대비되는 밝고 순수한 아름다움으로 관객의 마음에 오래 남았다. 지젤을 짝사랑하는 힐라리온 역의 알렉산드르 세이트칼리예프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풍부한 감정 연기와 안정적인 테크닉으로 극의 긴장감을 이끌었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4월 27일까지. 


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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