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흐리고 비가 쏟아진다
구름은 무거워지면 자신을 덜어내야 하기에
버려진 잉여들이 숱하게 떨어진다
남겨둘 물방울과 버릴 물방울을
구름은 과연 어떻게 선택하는가
자기 자리를 잃은 빗방울들이 무차별 투하되는
어두운 한낮, 여기저기 부딪치는 빗줄기들의 비명 소리
사람들은 내리는 빗방울이 다 똑같다 생각하지만
떨어지는 소리는 모두 다르고
물 고인 사연들도 모두 제각각인 저 방울방울들
흙 없는 도시의 길 위에 스미지도 못하는
이방인들. 서로 섞이고 부딪치며
무수히 떨어지는 빗방울들의 이름은
아무도 모르고 구름조차 기억하지 않을
저 빗방울 군중들의 무겁고, 무거운 빗소리
구멍 뚫린 하늘을 노려본다

며칠 전 종일 빗속을 쏘다녔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눅눅한 우산을 현관에 펴 둔 채 한참을 보냈다. 물기는 잘 마르지 않았다. 시를 읽고 보니, 그 물기는 “버려진 잉여들”의 미처 지우지 못한 “사연들”이었던 것이다. 끝내 아무 기척 없이 말라버린 우산과 우산을 착착 접어 서랍 속에 던져버린 무심함을 돌아본다.
이제 비 오는 날이면 빗방울을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시인의 말대로,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결코 같지 않은 것들. “모두 제각각인 저 방울방울들”은 도시를 사는 우리의 얼굴을 닮아 있을 것도 같다. 우산 속에 감춰져 잘 드러나지 않지만 저마다 다른 표정, 다른 감정을 품고 빗길을 걷는 우리. 그런 우리도, 저 빗방울들도 모두 “길 위에 스미지” 못한 “이방인들”이라는 점이 새삼 서글프게 다가올지도. 그러나 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섞이고 부딪치며 떨어지다 보면 잠시 혼자가 아닌 순간을 맞기도 한다는 것.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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