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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교황의 한국 사랑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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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4-22 16:00:47 수정 : 2025-04-22 16: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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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5월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78∼2005년 재위)를 태운 특별기가 김포공항에 착륙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교황의 방한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요한 바오로 2세가 무릎을 꿇고 한국 땅에 입을 맞추는 모습은 지금도 우리 국민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당시 그는 도착 성명에서 한국인들을 향해 “여러분의 조국이 대결과 전쟁이 아니고 대화와 상호 신뢰, 형제애로 다시 화목한 한가족이 되어 불신과 증오, 무력 같은 이 세상의 거짓됨을 폭로해주길 바란다”고 축복했다. 민족의 염원인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한 것이다.

1984년 5월3일 사상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김포공항에 착륙한 특별기에서 내리자마자 한국 땅에 입맞춤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그로부터 3년 뒤인 1987년 6월10일 5공 전두환 정권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이 ‘독재 타도’와 ‘호헌(護憲) 철폐’를 외치며 서울 명동성당을 점거했다. 6월항쟁의 시작이었다. 공안 장관 회의에서 “명동성당에 전경들을 투입해 시위를 진압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제기됐다. 고건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장관은 반대했다. 그는 “성당에 전경이 강제 진입하면 바티칸(교황청)에서 가만 있겠느냐”며 “우리는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데, 가톨릭에서 불매운동 한마디라도 하면 한국 경제는 망한다”고 했다. 결국 이 주장이 받아들여져 시위대의 자발적 해산을 기다리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민주화 이후인 1989년 10월 다시 방한했다. 한국을 유난히 사랑했던 교황이라고 불러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 뒤 무려 25년이 흐른 2014년 8월 교황 프란치스코가 한국에 왔다. 그가 교황에 오른 것이 2013년 3월의 일이니 즉위 후 1년 5개월 만에 한국을 방문한 셈이다. 더욱이 아시아 국가들 중에선 처음이었다. 당시 한국 사회는 그해 4월 일어난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프란치스코가 희생자와 그 유족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은 한국인들에게 크나큰 위로를 안겼다. 오죽하면 일각에서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찬사까지 나왔겠는가.

22일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 지하성당을 찾은 시민이 전날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빈소 앞에서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프란치스코가 21일 88세를 일기로 선종(善終)했다. 하루 전 부활절 미사에 참석해 육성 메시지를 들려준 점을 감안하면 자못 충격적이다. 몇 해 전부터 건강 악화설이 나돌았던 프란치스코는 올해 들어 폐렴 증세로 꽤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했다. 3월23일 퇴원한 그에게 의료진은 “최소 2개월 동안 요양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는 영남 지역의 대형 산불로 큰 피해가 발생한 한국 국민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하길 기도한다”며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는 등 대외 활동을 계속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한국을 향한 관심과 애정의 끈을 놓지 않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명복을 빈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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