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현지시간으로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종교 자유가 크게 제한되는 북한, 중국 등에도 꾸준히 인류애적 손길을 내밀었다. 법적, 공식적으로는 신앙의 자유를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개인이 종교를 갖는 것을 금기시하는 이들 국가는 끝내 교황의 방문이나 바티칸과의 수교를 허용하지는 않았다.

◆北에선 ‘수령 숭배’ 외 어떤 종교도 금지…교황 방북 의사 무시
교황은 2018년, 2020년, 2021년까지 3번에 걸쳐 “북한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이를 언급한 2021년의 경우 한국 가톨릭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를 통해 교황이 “같은 민족이 갈라져 이산가족처럼 70년을 살아왔다. 이 얼마나 큰 고통인가. 같이 살아야 한다”며 “준비되면 북한에 가겠다”고 한 사실이 전해졌다.
당시는 가톨릭 신자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끄는 새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국 가톨릭교회와 민간 차원의 교황 방북 재추진 여론이 형성되던 때였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교황의 북한 방문에 국내외에서 나오는 기대를 인지하고, 북한 김정은 총비서가 공식 초청할 경우 북한에 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었다.
2018년에도 이백만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와 독대하는 자리에서 이 전 대사가 “북한에 직접 가서 동포들을 축복하면 한반도 평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권하자 교황은 “기회가 되면 북한에 꼭 가고 싶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은 매번 교황의 방북 의사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했고, 교황의 방북은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이는 북한이 사실상 수령 개인 숭배 외의 타 종교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국 국무부는 북한을 2001년부터 20년 넘게 ‘종교 자유 특별우려국’으로 지정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북한의 세계 최악의 종교 탄압국으로 지목된다.
국무부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여전히 종교 활동을 이유로 개인을 처형, 고문, 체포 등 신체적 학대를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허가받지 않은 종교 활동에 참여하거나 관련 자료를 소지한 사람을 서로 신고하도록 당국이 권장하고 있다는 사실도 비판 대상이 됐다.
국제기독교 선교단체인 오픈도어스의 ‘2023 세계감시목록’은 북한에서 여러 지하교회 소속 종교인 수십 명이 적발돼 처형됐고, 100여 명이 노동교화소로 보내졌다고 밝혔다.
종교뿐 아니라 점술과 같은 다양한 미신행위를 대상으로도 전국적인 근절 지시가 있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사람들에게 점을 봐주던 점쟁이 5명이 1년의 노동교화형을 받고 교화소로 보내졌다’는 등의 내용이다.
북한 헌법 제68조는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 이 권리는 종교 건물을 짓거나 종교의식 같은 것을 허용하는 것으로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탈북민들의 증언은 계속되고 있다.

◆‘무신론 국가’ 중국과도 관계 개선…수교·방중은 못 이뤄
교황은 수십년간 껄끄러운 관계였던 중국과도 끊임없이 거리를 좁히고자 했고, 일정 부분 개선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 공산당 일당 체제인 중국은 공식적으로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무신론 국가’이며 당원이 종교를 갖는 것도 금지한다.
중국은 특히 교황의 주교 임명권을 인정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주교를 임명하면서 교황청과 수십년간 갈등을 빚어왔다. 신장·티베트 등 지역에서의 소수민족·종교 탄압 문제에서도 대립했다.
2013년 즉위한 교황은 악조건 속에도 중국과 해방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즉위 다음해인 2014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편지를 주고받은 사실을 공개하며 중국 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한 교황은 “중국인들은 위대한 민족이며 그들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중국을 방문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당연하다. 내일이라도 가겠다”, “언제든 중국을 방문할 준비가 돼 있다” 등으로 답해왔다. 지난해 9월에는 아시아·오세아니아 4개국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중국은 대단한 나라로, 중국을 존경한다”고 언급했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계속 보여온 교황의 노력은 성과가 있었다. 바티칸과 중국은 2018년 9월 주요 갈등 요인이던 주교 임명권 문제에 합의하고, 2년 기한의 잠정 협정을 맺었다. 이 협정은 2020년과 2022년 두 차례 연장된 데 이어 지난해 10월엔 4년이 추가로 연장됐다. 이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교황을 세계 가톨릭교회 최고 지도자로 인정하고, 교황청은 중국 당국이 자체 임명한 주교를 승인하기로 했다.
그러나 양국이 외교 관계를 맺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고, 교황의 오랜 바람이던 중국 방문도 이뤄지지 못했다. 가톨릭교회 수장인 교황의 중국 방문은 지금까지 한번도 성사되지 않았다. 중국 내 가톨릭신자는 12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한편 한국 외교부는 교황 장례 일정이 현지에서 구체화되는 대로 조문사절단 파견을 추진할 예정이다. 아직은 사절단 구성이 끝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전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교황 선종 후 조전을 발송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의 조문은 2005년 요한 바오로 2세 선종 때에 비추어 비슷한 형식을 취할 것으로 관측된다. 당시 외교장관은 주한 교황청대사관에 마련된 곳에 조문 서명을 하러 방문했다. 이를 대사관과 협의 중으로, 23일 중 조 장관의 방문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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