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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버림받는 노령마 더는 없게… 말 복지 패러다임 전환 [농어촌이 미래다-그린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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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5-16 06:00:00 수정 : 2025-05-15 16:4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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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첫 종합계획 발표

의무 등록제로 평생 돌봄체계 구축
구호 전담 ‘보호모니터링센터’ 설립
조련사·장제사 시험 복지과목 신설

복지 인증제 도입… 우수시설 지원도
갈 곳 없던 ‘유니콘’ 장수목장서 새 삶
생애 전주기 돌봄 시스템 주목 받아

지난해 10월15일 충남 공주시의 한 무허가 목장에서 굶주림과 방치로 고통받던 말들이 집단으로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분뇨가 3㎝ 이상 쌓인 사용장에는 백골화된 말 사체와 갈비뼈가 훤히 드러난 말들이 방치돼 있었다. 특히 현장에서 확인된 절단된 말의 신체 부위와 피 묻은 흉기 등은 단순한 방치를 넘어 불법 도축 정황까지 의심케 했다. 이른바 ‘폐마목장’으로 불린 이 현장은 국민적 공분을 자아내며 국내 말 복지 체계의 허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현장에서 구조된 퇴역 경주마와 승용마 등 15마리 중 상당수는 개인이나 승마시설로 입양됐지만, 당시 24세의 고령이었던 말 한 마리는 쉽게 새 보금자리를 찾지 못했다.


이 말의 이름은 ‘유니콘’. 구조 직후 경기도 이천의 임시 보호소에서 4개월간 머물며 건강을 회복했지만, 나이와 건강상태 등을 이유로 입양 대상에서 번번이 제외됐다. 결국 유니콘은 한국마사회가 직접 입양을 결정하면서 전북 장수군 장계면에 위치한 장수목장으로 옮겨졌다.

장수목장은 제주도를 제외한 내륙에서는 국내 최대 규모의 말 전문 목장으로 꼽힌다. 2007년 개장 이후 경주마 생산과 육성, 승용마 훈련, 말 문화 체험 등 다목적 기능을 수행하며 국내 말산업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해왔다. 최근에는 말 생애 전주기 보호의 마지막 단계인 ‘평생 돌봄’ 기능까지 확대하며 복지의 개념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유니콘은 현재 이곳에서 말 전문 수의사와 복지 인력의 보살핌 아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입양 당시 450㎏에 불과했던 유니콘의 체중은 현재 500㎏까지 늘었고, 겉보기에도 건강한 체형과 윤기 있는 갈기를 되찾았다. 넓은 목장을 여유롭게 뛰어노는 유니콘에게서 더는 학대의 흔적은 찾을 수 없게 됐다.

 

정부도 말 복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제도적 대응에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말 복지 제고 대책(2025~2029)’을 수립해 처음으로 말 복지를 위한 정부 차원의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동물학대 방지를 넘어 생애주기별 보호 체계 구축, 복지 사각지대 해소, 산업 종사자 교육 및 민관 협력 기반 조성이 골자다.


대책의 주요 내용은 크게 네 가지 분야로 나뉜다. 우선, 말 복지 사각지대 최소화를 위해 학대·방치 말의 구호와 재활을 전담할 ‘말 보호모니터링센터’를 설립하고, 관련 신고에는 포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도입한다. 또한 매년 실시하는 ‘말산업 실태조사’에는 복지 항목이 추가돼 정책의 기초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둘째, 생애주기형 복지 지원을 위한 제도 개편이 추진된다. 현재 자율신고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말 등록제는 의무 등록제로 전환된다. 의무 등록제가 될 경우 전체 마릿수에 대한 관리도 가능하다.

 

우리나라 말 두수는 2020년 2만6525두에서 지난해 2만7521두로 3.8% 늘었다. 관련 사업체 수도 2513개에서 2668개로 6.2% 늘었고, 승마 체험인구도 같은 기간 45만5000명에서 52만1000명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말 등록이 제대로 되지 않아 ‘용도’가 끝난 말의 이력까지 확인할 수 없는 실정이다.

셋째, 복지 인식 제고를 위해 말 복지 인증제도를 도입하고, 복지 우수시설에 대한 우대 지원과 복지 취약시설에 대한 전문가 현장 컨설팅을 제공한다. 말 조련사, 장제사, 재활승마지도사 등 말 관련 자격시험에는 복지 과목이 신설되며, 교육을 이수하지 않으면 말산업 육성 지원사업 참여가 제한된다.

마지막으로 민관 협력체계 강화 차원에서 정부, 한국마사회, 동물보호단체, 말산업 종사자 등이 참여하는 민관협의체가 구성된다. 현장의 다양한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고, 이를 5개년 종합계획에 담아 실효성 있는 추진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말 복지 정책이 제도 정비만으로 성과를 거두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농식품부는 이번 대책 추진에 필요한 예산을 2029년까지 66억원으로 추산했으며, 마사회도 복지기금 103억원과 자체 예산 5억원을 확보한 상태다. 다만 말 한 마리를 관리하는 데 월 150만~200만원이 소요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재원 확대는 불가피하다는 것이 현장의 반응이다.

안용덕 농식품부 축산정책관은 “이번 대책은 말 복지 증진을 위해 최초로 마련한 대책으로, 시행을 통해 복지 사각지대 해소의 기반을 조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국민 요구에 부응하는 말 복지를 제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안용성 기자 ysah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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