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라 살림이 악화일로다. 어제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1∼3월 관리재정수지는 61조3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1년 전보다 14조원 줄었지만, 역대 두 번째로 많다. 이달 초 13조8000억원의 추가경정예산까지 합치면 역대 최고 수준이다. 국가채무도 1175조9000억원으로 3개월 사이 34조7000원이나 불어났다. 경기 부진 여파로 세수 증가세가 미미한데 재정 조기 집행 등 씀씀이가 확 커진 탓이다.
이런데도 6·3 대선을 앞두고 퍼주기와 감세 공약이 쏟아지니 걱정이 크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약속한 공약에는 월 10만원 아동수당지급 대상 확대(8세→18세 미만)부터 지역 화폐(지역사랑 상품권) 전국 확대, 양곡관리법 개정, 농어촌 기본소득, 영유아교육·교육비 지원 확대까지 선심성 사업이 즐비하다. 사업마다 연간 수조원 이상의 돈이 필요하지만, 재원 충당 방안은 오리무중이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도 법인세·상속세 최고세율 인하, 소득세 공제확대 등 감세를 약속했지만 세수 부족을 어떻게 메울지 답이 없다.
나라 곳간은 이런 공약을 감당할 여력이 바닥난 지 오래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해마다 100조원 안팎의 재정적자가 발생했고 세수결손도 지난 2년간 87조2000억원에 이른다. 올해도 경기 부진 여파로 3년째 대규모 결손이 불가피하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국가부채비율은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54.5%로 비기축통화국 평균치(54.3%)를 처음 넘어서고 5년 후에는 59.2%로 치솟는다. 증가 속도가 주요국 중 가장 빠르다. 한 달 전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한국을 향해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중기적으로 국가신용등급 강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 경제가 이미 0∼1%의 저성장 국면에 들어선 상황에서 막대한 빚을 내지 않고는 수조, 수십조원짜리 공약을 실행하는 건 불가능하다.
재정은 경제위기를 막아낼 방파제이자 최후의 보루다. 이제라도 대선후보들은 망국적 포퓰리즘 공약을 자제해야 한다. 대신 과잉규제와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개선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근본 해법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방만한 나라 살림을 막을 수 있는 재정준칙 법제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재정준칙이 없는 나라는 한국과 튀르키예뿐이다. 후보들은 선심성 공약 제시에 앞서 재정준칙 도입부터 약속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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