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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꽃에게 길을 묻다]⑮ 고창 선운사 상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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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09-23 11:48:00 수정 : 2005-09-23 11: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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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에게서 위로를 받았다. 이파리가 하나도 없는 기다란 연녹색 꽃대 끝에 예닐곱 개의 봉오리가 서로 엉겨
붉은 화관(花冠)을 만드는 꽃. 왕관처럼 빛나는 붉은 꽃 ‘꽃무릇’, 석산 혹은 상사화.
고창 선운산 도솔천에 무리지어 피어난 그녀들은 지금까지 지녀왔던 계절의 상투적인 이미지를 바꾸어놓았다.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와 갈대의 서걱거림과 퇴락한 빛깔로 떠오르는 가을. ‘꽃무릇’ 붉은 잔치판은
가을이 결코 스러져가는 것들의 차지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본디 상사화는 여름에 피어나는 노랑에 가까운 주황색 꽃이다. 추석 전후에 붉게 피어나는 ‘꽃무릇’이
제 이름을 외면당하고 상사화로 불리는 연유는 꽃을 피우는 생태가 상사화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파리만 무성하게 돋아나 ‘살찐 부추’ 같기도 한 꽃무릇은 여름이 오면 어느 날 모두 사라지고 만다. 땅속으로 들어가 알뿌리의 부식토로 자신들을 헌정한 것이다. 그러다가 가을이 오면 불쑥 꽃대 하나를 내민다. 그 꽃대는 점점 키가 커져 마침내 붉은 꽃을 매단다. 그것이 ‘꽃무릇’인데, 꽃대가 마늘대처럼 이파리 하나 없이 밋밋해서 석산(石蒜)이라고도 부른다. 한자를 직역하면 ‘돌마늘’이다. 시월이 가고 십일월이 오면 꽃은 어김없이 스러지고 그 자리에 다시 무성한 잎이 돋아난다. 이렇다 할 열매도 없이 꽃은 그냥 사라진다. 이러한 행태를 두고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꽃과 잎이 영원히 서로 만나지 못하는 ‘이별꽃’이라고 했고 ‘상사화’라고도 불렀다.

“남은 부분은 생략이다/ 저 물가, 상사화 숨막히게 져내려도/ 한 번 건넌 물엔 다시 발을 담그지 않으리라/ 널 만나면 너를 잃고/ 그를 찾으면 이미 그는 없으니/ 십일월에 떠난 자 십일월에 돌아오지 못하리라// 번뇌는 때로 황홀하여서/ 아주 가끔 꿈속에서 너를 만난다/ 상처로 온통 제 몸 가리고 서 있어도/ 속이 아픈 사람들의 따뜻한 웃음/ 오래 그리웠다// 산을 오르면서 누구는 영원을 보고 누구는 순간을 보지만/ 애써 기다리지 않아도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온다/ 사람이 평생을 쏟아부어도 이루지 못한 평화를/ 온몸으로 말하는 나무와 풀꽃같이/ 그리운 것이 많아도 병들지 않은/ 무욕의 정신이여// 그때 너는 말하리라/ 고통이라 이름한 지상의 모든 일들은/ 해골 속 먼지보다 가볍고/ 속세의 안식보다 더한 통속 없으니/ 뼈아픈 사랑 없이는/ 어떤 하늘도 견뎌낼 수 없다는 것을// 기다리지 않아도 마침내 밤이 오고/ 마지막 새소리 떨어져내릴 때”
(권경인, ‘슬픔의 힘’ 전문)

시인은 말한다. 속이 아픈 사람들의 따뜻한 웃음, 오래 그리웠다고. 꽃무릇 긴 꽃대 위의 꽃은 시인에게 붉고 따뜻한 웃음이다. 비록 널 만나면 너를 잃고 그를 찾으면 이미 그는 없지만, 번뇌는 때로 황홀하여서 꿈속에서 만나기도 한다. 붉은 꽃은 시인에게 상처의 갈라진 틈에 흐르는 핏물의 빛깔쯤이다. 그러나 고통이라 이름한 지상의 모든 일들은 해골 속 먼지보다 가볍고, 애써 기다리지 않아도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온다. 기다리지 않아도 마침내 밤은 온다. 그러니 그대들 평화를 누리라. 속세의 안식보다 더한 통속 없으니, 뼈아픈 사랑 없이 하늘의 무게를 견뎌낼 생각은 하지 마시라. 그리운 것이 많아도 병들지 않는 무욕의 정신을 키워라. 상념의 꽃은 시인의 상처에서 상사화와 더불어 이렇게 다시 피었다.
꽃무릇은 배롱나무처럼 사찰 주변에서 많이 피어난다. 그 중에서도 영광 불갑사와 고창 선운사가 꽃무릇의 자생지로 유명하다. 선운사 관리사무소에서 도솔암으로 오르는 계곡 주변에 꽃무릇은 지천으로 피어난다. 선운사로 출가한 스님을 사모한 여인이 절 밖에 그를 목메어 기다리다 ‘상사화’가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구월이 와서, 선운사 관리사무소에 문의했을 때 10일경부터 피기 시작할 거라는 소식을 들었다. 조급함을 누르고 며칠 뒤에 내려갔을 때 꽃무릇은 막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것도 반가웠는데 동행한 그 지역의 시인 하나는 대단히 실망한 표정이었다. 이 녀석들이 한꺼번에 피어야 입을 다물지 못하는 감동을 맛볼 수 있노라고 했다. 다시 일주일쯤 지나 추석이 와서 노모와 땅속에 누워 있는 분들에게 안부를 전하기 위해 고향에 내려갔을 때 전 부치는 고소한 냄새를 빠져나와 다시 선운사로 달려갔다. 연녹색 꽃대 위에서 붉디붉게 계곡을 환하게 밝히는 꽃들의 잔치판이라니. 그것은 분명히 위로였다. 권경인 시인은 그 비결을 ‘슬픔의 힘’이라고 불렀다. 괜찮다, 다 괜찮다, 지난 계절 내내 비록 땅속에서 어둡고 고통스러웠으나 이제 다 괜찮다고 일제히 합창하듯 붉은 얼굴을 흔들어대는, 흔연한 슬픔의 노래였다.

“너의 운명은 네 성격 탓이었으리라/ 육지의 발끝에라도 달려가 붙어 있거나/ 아니면 물속으로 차라리 잠겨 버릴 일이지/ 이만큼 거리를 두고 외따로 떨어져/ 댓잎으로 바람 향해 울을 치고/ 아침바다 같은 것들만 네게 오게 하는 것이/ 오지 못하게 한 것들로 한없이 외롭게 사는 것이// 너의 운명은 네 고집 탓이었으리라/ 떠나온 곳에 대한 사랑을 완전히 버리거나/ 아니면 네 기슭에인가 몇 채라도 지어/ 고즈넉한 사람 한둘쯤은 살게 할 일이지/ 제 깊은 곳에 상사화 몇 포기 자라게 하고/ 저녁마다 언덕 위에 왕달맞이꽃 키우면서도/ 바위 너설이 물살에 다 문드러지도록 홀로 사는 것이// 부드러운 네 고집 탓이었으리라/ 댓잎 같은 네 성격 탓이었으리라”
(도종환, ‘무인도’ 전문)

‘제 깊은 곳에 상사화 몇 포기 자라게 하고’ 부드러운 고집으로 외로움을 스스로 불러들이는 무인도. 시인은 상사화에서 무인도의 속깊은 외로움을 보지만, 상사화는 정작 외롭지 않다. 상사화는 만나지 못할 것을 만나기 위해 애쓰는 게 아니라, 비록 만나지는 못해도 잎은 꽃을, 꽃은 잎을 배려해 주어진 시간을 헌신적으로 살아내는 꽃이다. 무성한 잎이 피어나 어느 날 흔적도 없이 모두 사라지는 이유는 땅속의 알뿌리를 위해 왕성한 광합성을 한 뒤 부식토가 되기 위함이요, 그 자리에서 홀연히 올라와 피우는 꽃은 잎의 헌신을 기념하기 위한 노래다. 그 꽃으로 인해 존재가 명징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식물학자들은 잎과 꽃이 서로 그리워할 리 만무하다고 실소를 머금는다. 암술과 수술이 그리워한다면 그럴 듯하지만 잎과 꽃은 서로 아무런 연관도 없는 사이라는 것이다. 사찰 주변에 꽃무릇이 많은 이유도 스님을 그리워한 여인이 꽃이 되었다는 속설과는 달리 꽃무릇, 석산의 알뿌리에 함유된 성분이 탱화나 불경에 좀이 슬지 않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라고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알고 나면 시시하다. 지당한 말이지만 식물들도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다.

“잔디밭에 쓰러진/ 분홍색 상사화를 보며/ 혼자서 울었어요// 쓰러진 꽃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하늘을 봅니다// 비에 젖은 꽃들도/ 위로해주시구요/ 아름다운 죄가 많아/ 가엾은 사람들도/ 더 많이 사랑해주세요// 보고 싶은 하느님/ 오늘은 하루 종일/ 꼼짝을 못하겠으니// 어서 저를/ 일으켜주십시오/ 지혜의 웃음으로/ 저를 적셔주십시오”


(이해인, ‘작은 위로’ 전문)

이해인 수녀는 꽃들에게서 사람의 마음을 읽었다. 고독하게 솟아나 긴 꽃대 위에 꽃을 매달았다가 비바람에 쓰러진 상사화. 쓰러진 상사화에서 아름다운 죄가 많아 가엾은 사람들을 보았다. 오늘도 아름다운 죄를 짓기 위해 다시 눈을 뜬다. 사람만 죄를 짓는다. 식물의 세계에는 죄라는 단어조차 없다. 피고 질 뿐이다.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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