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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옥 화가, 한국화여성작가회장

자연은 어떠한 조건을 전제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거기에 그렇게 있으므로 그곳에 있는 것이 자연이다. 마음의 감흥에 따라 느낌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린 그림이 나의 작업 주제 ‘자연에서’이다.



주제도 표현방법도 그래서 자연인 것이다.



그것이 꽃의 형상이어도 좋고 숲의 모습이어도 좋다. 마음에 비추어지는 것을 그냥 그대로 솔직하게 쏟아낼 수 있는 것. 잘 그리려고, 잘 만들려고 애를 쓰면 쓰는 만큼 조잡해지고 불순해지는 것. 원래 그 자리에 그렇게 있었던 것처럼 표현하려는, 표현해야 하는 것이 곧 자연임을 살면서 더욱 깊이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나는 지나가는 바람에 스친 것처럼 그려지지 않은 것처럼 그리려 했다. 다듬고 꾸밀수록 더 속되고 천박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의 자연이 유현(幽玄)의 길목에서 어렵사리 마주쳤다.



이치가 깊고 그윽하여 알기가 어렵다는 유현은 정적의 예술사상으로 노경(老境)의 미감을 세분한 말이다. 시간적으로 오랜 수련의 결과와 대상과의 관계성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유심 감(幽深感)이라면 공간적으로 다각도의 관찰결과와 대상과의 전후, 좌우, 상하와의 관계성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유현감(幽玄感)이라 한다.



그러한 유현은 대개 간접적이거나 복합적으로 얻는 미감을 말한다. 대상을 눈앞에 보이는 존재, 직접적인 관계만으로 보지 않고 다른 사물과의 연간 관계에서 간접적으로 누리는 미감이 유현이다.



대상만을 관찰하고 또 대상에 접근하는 표현 방법과는 대조적이며, 항상 정적인 고요의 상태에서 대상의 그윽한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다. 어떠한 대상이든 사물이든 그것을 독립적이고 고정적인 존재로만 보지 않고 반드시 상호 관련성에서 느끼고 보는 것이다. 서양과 차별되는 동양의 미감, 한국의 미감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화면위에서 한 마리의 새가 드넓은 창공을 날아가는 한 마리의 새로, 또 화선지위에 함초롬히 핀 한 송이의 국화꽃에 비바람을 포용한 대지, 그리고 간밤에 머금은 이슬까지 표현되었음을 안다. 어떠한 사물이나 대상을 독립된 개체로 보지 않고 주위와의 관계 형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 유현의 미감을 오늘 자연에서 만나고 있다. 반갑고 감격스럽다. 얼마나 찾았는데…



김춘옥 화가, 한국화여성작가회장

<스포츠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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