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로 뛰쳐나온 사람들 기다렸다 마구 찔러
참사현장 20일 ‘묻지마 살인’으로 6명의 여성이 숨진 서울 강남구 논현동 D고시원 사건현장에서 한 소방관이 유독가스와 연기를 빼내기 위해 창문을 부수고 있다. 송원영 기자 |
참극은 이날 오전 느닷없이 시작됐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D고시원 3층에서 불길이 솟아오른 것은 이날 오전 8시15분쯤. 고시원에 사는 정모(31)씨가 3층 자신의 방 침대와 책상에 미리 준비해 온 ‘지포’ 라이터용 휘발유 2통을 뿌린 뒤 불을 질렀다. 4층 건물 중 3∼4층을 차지하는 이 고시원의 다른 투숙자들은 “불이야”라는 외침과 갑작스러운 연기에 놀라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앞다퉈 방을 빠져 나와야 했다.
고시원에 사는 69명의 투숙자 가운데 40여명은 인근 영동시장과 식당에서 일하는 재중동포여서 새벽 근무를 마친 뒤 방으로 돌아와 불이 난 시각까지도 곤히 잠들어 있었다.
화재 경보기 소리가 들리고 연기가 방으로 새어 들어오자 투숙자들은 서둘러 방을 빠져나왔지만 이들을 기다리던 것은 살인마 정씨였다.
그는 범행을 미리 계획한 듯 검은색 상하의와 모자를 착용하고 있었고 얼굴에는 고글과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몸에는 여러 흉기를 지니고 있었다. 화재로 인한 정전이나 연기가 날 것에 대비한 듯 머리에 쓰는 소형 플래시도 소지하고 있었다.
정씨는 방화 5분여 뒤인 오전 8시20분쯤부터 연기를 피해 3층 복도로 뛰쳐나온 투숙자 5∼6명을 흉기로 찔러댔고 다시 4층으로 올라가 투숙자 4∼5명을 추가로 공격했다. 그는 방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일부 투숙자에게도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렀다.
정씨의 활극에 곳곳에서 비명이 들렸고 방 안으로 연기가 새어 들자 도로에 인접한 방을 쓰던 투숙객 일부는 3층 아래로 뛰어내려 이 중 1명은 충격을 이기지 못해 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졌다.
고시원 안에서 정씨 범행을 목격한 L씨는 “비명이 사방에서 들렸고 방에 피를 흘리고 있는 아주머니들이 있었다”며 지옥 같았던 모습에 몸서리를 쳤다. 그의 두 손바닥은 완강기 로프를 잡고 뛰어내리다 생긴 마찰열로 모두 벗겨져 절박했던 당시 상황을 대변했다.
정씨는 4층 창고방에 숨어 있다 피해자인 것처럼 행동하며 소방관에 이끌려 탈출을 시도하다, 출동한 경찰관들이 그의 옷차림을 수상히 여기면서 덜미를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늦게 공개된 고시원 3층의 내부는 전체가 검게 타거나 그을려 처참한 당시 상황을 보여줬다. 내부에는 유독가스와 매캐한 숯 냄새가 늦게까지 가시지 않았고, 바닥에는 주인 잃은 신발들과 옷가지 등이 어수선하게 널려있었다.
4층은 불길이 닿지 않았지만 투숙자들이 탈출하려고 유리창을 깨어놓아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더했다.
소식을 듣고 삼삼오오 모인 주민들은 아수라장이 된 고시원 주변을 돌며 혀를 찼다. 주변 편의점 직원은 “오전까지만 해도 불을 피해 밖으로 뛰쳐나온 고시원생들의 절규로 주변이 시끄러웠다”며 몸서리쳤다.
김재홍·조민중 기자 h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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