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 휩싸인 망루 경찰이 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재개발지역 4층짜리 건물에서 농성 중인 철거민을 강제 진압하기 위해 특공대를 태운 컨테이너(위쪽)를 건물 옥상으로 투입하는 순간 철거민들이 농성을 벌이던 망루(아래쪽)가 화염에 휩싸여 쓰러지고 있다. 연합뉴스 |
경찰은 오전 6시12분 어둠이 걷히기도 전에 기습적으로 물대포를 쏘면서 진압을 예고한 데 이어 30분 만에 기중기와 컨테이너를 이용해 특공대를 옥상으로 올려보냈다. 세입자들과 전국철거민연합회 회원들이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히 저항하는 과정에서 망루로 쌓은 컨테이너에서 불이 나는 바람에 고귀한 목숨을 앗아갔다.
◆안타까운 참사로 이어진 진압 순간=경찰과 목격자 등에 따르면 경찰은 6시12분 4층 건물 옥상 망루에 최루액이 들어 있는 물대포를 쏘며 진압을 시작했다. 물에 젖은 상태에서는 쉽게 불이 붙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이어 6시45분 10t짜리 기중기에 컨테이너를 매달고 특공대원을 태워 옥상으로 올려보냈다. 특공대원들은 농성자들이 컨테이너를 3단으로 쌓아 만든 망루 주변으로 접근했고 망루 꼭대기에 몰려 있던 농성자들은 시너 등을 뿌리며 강력히 저항했다. 순간 농성자들이 던진 화염병으로 불꽃이 일면서 옥상에 있던 시너에 불이 붙었고 특공대원들은 휴대용 소화기를 이용해 불길을 잡았다.
화재 진화 후 특공대원들은 오전 7시24분 망루 아래층으로 다시 진입을 시도했고 농성자들도 시너를 뿌리며 맞섰다. 순간 ‘펑’ 소리와 함께 화염이 치솟으면서 망루 전체에 불이 붙었고 망루는 7시26분 무너졌다. 주변에는 농성자들이 화염병을 만들기 위해 쌓아 놓은 시너 70여 통이 있었다.
화재와 망루 붕괴로 세입자와 경찰 부상이 속출하자 특공대원들은 철수했고 30여분간 건물 주변 살수차와 소방대원들이 ‘원거리’ 진화에 안간힘을 썼다. 오전 8시쯤 불을 끈 뒤 망루에선 경찰 1명을 포함한 6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숨진 농성자 중 이모(70), 양모(55), 이모(50)씨 등 3명은 재개발 지역 세입자 등으로 신원확인됐고 나머지 시신 두 구는 각각 지문 및 유전자 감식을 벌이고 있다.
◆사상자 왜 속출했나=현장에 다량의 시너가 적재된 상태에서 불이 나고 망루가 붕괴된 게 희생을 키운 직접적인 원인이다. 불이 난 원인은 정밀 감식을 거쳐야 규명될 것으로 보이지만, 경찰은 농성자들의 저항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언론사의 현장 촬영 동영상을 보면 옥상에서 한 철거민이 화염병을 던지려다 옷에 불이 붙은 뒤 순식간에 옥상 안쪽으로 불이 번지기도 했다. 당시 건물에는 수많은 화염병과 시너 통, 염산, LP가스 통이 놓여 있는 상황이었다. 컨테이너를 3단으로 쌓아 만든 망루는 화재 1분 만에 무너져내려 위층에 있던 농성자들의 부상이 속출했다.
경찰은 신속한 진압을 위해 새벽 ‘고공작전’을 감행하면서 위험 물질 폭발 또는 화재, 추락 등에 대한 대책을 충분히 세우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1차 진입 시도 후 옥상에 시너가 뿌려져 대형 참사를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망루 진입을 시도했다.
목격자 우모(42)씨는 “(특공대원을 태운) 컨테이너 2개가 올라간 후 ‘펑’ 하는 폭발 소리가 2번 정도 난 후 불길이 솟아올랐다”며 “화염을 피해 농성자 1명이 건물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전했다. 다른 목격자 정모씨는 “경찰이 옥상에서 무리하게 토끼몰이식으로 진압했다”고 주장했다.
김재홍·이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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