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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 취급하는 선생님 추궁 못견뎌… 소녀의 꿈 산산이

입력 : 2009-02-26 00:34:48 수정 : 2009-02-26 00:3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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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자퇴서 낸 10대 미혼모 이야기
“아기만 없었다면 지금쯤 대학 입학식을 기다리며 즐거워하고 있겠죠. 간호사도 되고 싶었고 꿈이 많았는데….”

놀랍고 무서웠다. 자신한테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예상치 않게 생긴 아이가 앞날을 가로막는다는 생각에 ‘무서운’ 생각도 했다. 학교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배움의 끈을 놓아버리기에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지난해 7월 고등학교 3학년이던 유모(19)양은 고민 끝에 자퇴서를 냈다. 점점 불러오는 배를 감추면서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임신 사실을 알고 추궁하는 교사의 ‘따가운’ 시선은 견디기 힘들었다.

중학교 때부터 사귄 학교 선배와의 사이에서 아기가 생긴 사실을 안 건 그 해 3월. 몇 번을 망설이다 들어간 산부인과에서 ‘임신 12주’라는 진단을 받았다.

유양은 ‘아이가 생겼다’는 충격보다 학교를 그만두는 게 두려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간호학과에 입학하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학급에서 성적도 줄곧 상위권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배만 그렇게 불러오지만 않았더라면 어떻게든 버텨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거듭된 추궁 앞에 결국 학교를 포기했다. 18살 소녀의 꿈도 그렇게 산산이 부서졌다.

유양은 학교를 나오자마자 현재 머물고 있는 서울의 한 미혼모 생활시설에 들어갔다. 지난해 10월 이곳의 도움을 받아 아이도 낳았다. 아이를 낳기로 한 선택을 후회해 본 적은 없다. 공부를 계속하지 못한 안타까움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고 한다.

유양은 “교복 입은 애들을 보면 ‘나도 저렇게 학교에 다니다 이제 대학생을 눈앞에 뒀을 텐데…’ 하는 생각에 씁쓸하다”며 “특히 친구들이 어느 대학에 붙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공부를 계속하지 못한 아쉬움이 더욱 크다”고 말했다.

유양은 대학에 대한 꿈은 ‘먼 미래’로 미뤘다. 일단 올 4월 고졸 검정고시에 응시한 뒤 꿈에 그리던 ‘간호사’는 어렵더라도 ‘간호 조무사’를 목표로 삼을 생각이다.

유양은 “‘미혼모’란 말을 듣는 것보다 하고 싶은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게 제일 속상하다”며 “남들보다 조금 일찍 아이를 가졌을 뿐인데 죄인 취급하며 학교에서 몰아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부분 학교에서는 학생이 임신을 한 사실을 알게 될 경우 학교 이미지 실추를 내세워 당사자 뜻과 무관하게 자퇴를 종용한다. 다른 방식으로 배움을 이어가도록 함께 고민해 주기는커녕 학교가 나서서 자퇴를 강요하는 것이다.

유양은 “학교에 임신한 학생 중에는 결국 아기를 지우고 학교에 다니거나 선생님한테 맞다가 유산된 경우가 있었다”면서 “선생님 추궁을 못 이기고 나온 나는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유양이 머물고 있는 시설의 관계자는 “학생 미혼모들이 공부할 기회를 박탈하면 결국 미래의 빈곤으로 연결된다”며 “이를 방치하면 나중에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만큼 이들을 껴안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이태영 기자 wooah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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