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선관위선 하루새 “적합→불가” 오락가락
전문가 "직원들 법률 지식 향상 등 대책 시급"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법 위반 여부를 묻는 후보자에게 해 준 ‘유권해석’이 법원에서 잇따라 뒤집히고 있다. 일부 후보는 중앙선관위 유권해석 덕에 무죄를 선고받지만 어떤 후보는 법대로 유죄를 선고받는 등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잘못된 유권해석이 문제가 돼 다시 선거를 치러야 하는 상황도 빚어질 수 있는 만큼 선관위 유권해석의 ‘품질’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7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지난해 4월 18대 총선 이후 중앙선관위 유권해석이 문제가 돼 기소된 사건은 6건으로, 이 중 3건에 대해 법원이 선관위와 다른 판단을 내놓았다. 법원은 지난 11일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정치자금법을 어겼다고 지적하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공 교육감이 아는 학원장한테서 1억여원을 무이자로 빌린 행위가 정치자금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중앙선관위가 “교육감 선거비는 정치자금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유권해석을 해 준 사실을 들어 면죄부를 줬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교육감 선거는 선거법상 시·도지사 선거 규정을 준용하는 게 일반인 시각에서도 충분히 이해하고 예견할 수 있다”고 중앙선관위를 우회적으로 꼬집었다.
이 논리대로라면 같은 혐의로 기소된 주경복 전 서울시교육감 후보도 무죄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주 전 후보는 선거비용 9억여원을 지원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데 변호인 측은 모두 중앙선관위의 유권해석을 받은 뒤 빌린 자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앙선관위가 공식 선거운동 기간 전에 후보자가 홍보물을 돌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오락가락하는 유권해석을 내린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은 지난해 3월5일 당원교육행사를 하루 앞두고 행사 인쇄물 내용이 불법인지 여부를 지역선관위에 질의한 결과 “적합하다”라는 회신을 받았다. 김 의원은 행사 당일 오후 선거사무소 팩스로 와 있는 정정 답변서를 보고선 당황했다. 중앙선관위에서 ‘불가’ 해석을 받은 지역선관위가 뒤늦게 팩스 한 장만 달랑 보낸 것이다.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대법원 판결과 헌법재판소 결정, 중앙선관위 공직선거법규 책자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지적하면서도 지역선관위의 ‘적합’ 회신을 받은 사정을 감안해 의원직을 잃지 않는 벌금 80만원을 선고했다.
1심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 재판에서도 중앙선관위 유권해석이 뒤집혔다. 중앙선관위는 “당채 발행이 적법하다”고 유권해석을 해줬지만 담당 재판부는 “당채를 발행해 1년 만기 연 1%의 저리로 입금받은 것도 재산상 이득”이라며 달리 판단했다.
최근 헌법재판소도 중앙선관위를 당혹스럽게 하는 결정을 내놓았다. 중앙선관위는 교육위원이 교육감 선거 60일 전 사퇴해야 하는지에 대해 “공직선거법에 준용해 사퇴해야 한다”고 유권해석했으나 헌재는 지난 5일 “공직선거법을 준용할 수 없으므로 사퇴할 필요가 없다”고 결정했다.
전문가들은 선거법이 절차에 관한 법이고 예측 가능한 모든 상황을 담을 수 없다 보니 빚어지는 현상임을 감안하더라도 선관위 유권해석이 번번이 법원에서 뒤집히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자칫 선관위의 잘못된 유권해석이 선거 무효와 재·보궐선거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법조 관계자는 “심판 판정이 그때그때 다르고, 나중에 뒤집히면 어느 선수가 경기 결과에 승복하겠느냐”면서 “중앙선관위보다 지역선관위 판단이 문제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선관위가 직원들의 법률 지식을 향상시키는 한편 질의회신 과정에 법률 전문가 참여를 활성화할 것을 주문했다.
김정필 기자 fermat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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