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전 MC, 일명 ‘바람잡이’다. 얼굴도,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내가 무대에 오르면 관객들은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러던 사람들이 내가 마이크를 잡으면 나를 향해 눈을 반짝이고, 어깨 힘을 빼고, 손뼉을 치며 웃는다. 이제 그들은 공연을 즐길 준비가 됐다. 그리고 난 무대에서 내려가야 한다. 메인 MC가 나오면 환호성은 더 커진다. 내가 할 일은 다 했다. 난 행복한 들러리다.” 지난 7일 오후 7시 서울 여의도 KBS 공개홀. 종영을 앞둔 ‘이하나의 페퍼민트’ 공연을 보기 위해 자리를 잡는 사람들로 객석이 부산한 가운데 한 남자가 무대에 올랐다.
◇SBS ‘김정은의 초콜릿’의 사전 MC 문종호 ◇KBS ‘이하나의 페퍼민트’의 사전 MC를 맡고 있는 MC딩동(본명 허용운) |
“…”
“군인에게는 여기 이 피아노를 선물로 드립니다. 피아노는 ‘영창’!”
‘영창’ 피아노로 군대의 ‘영창’을 연상케 한 ‘말장난’에 관객들이 폭소를 터뜨리며 무대에 시선을 고정하기 시작했다. 무대 옆에 있던 류명준 PD는 “사전 MC는 객석과 무대 사이에 계단을 놓는 존재”라며 “그가 하나하나 쌓아준 계단을 밟고 메인 MC가 무대에 오르고 비로소 방송이 시작된다”고 했다.
KBS ‘이하나의 페퍼민트’와 SBS ‘김정은의 초콜릿’의 사전 MC를 각각 맡고 있는 MC딩동(본명 허용운?31), 문종호(28)씨를 지난 9일 본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MC딩동이 이 길에 들어선 것은 군대 후임병의 ‘입담’을 접한 게 계기가 됐다. 레크리에이션을 하다 입대한 후임병의 얘기가 재밌어 사전 MC를 하게 된 MC딩동은 “제대 후 4년 넘게 부천의 한 이벤트 호프에서 사회를 보다가 명동 길거리를 무대로 케이블방송 VJ까지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매일 목청을 높이다보니 목소리가 안 나와 자막을 써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쫓겨나다시피 VJ를 그만둬야 했다.
어려서부터 개그맨이 꿈이었던 문종호는 서경석, 이윤석처럼 공부를 잘해야 대학개그제에 나갈 수 있는 줄 알고 건국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입학하자마자 대학로로 달려가 ‘컬트삼총사’에 들어갔다”면서 “하지만 2003년 KBS 개그맨 공채 최종에서 떨어진 충격에 바로 입대했다”고 했다.
◇지난 4일 서울 등촌동 SBS 공개홀에서 열린 ‘김정은의 초콜릿’ 녹화에 앞서 사전 MC인 문종호씨가 관객들 앞에서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SBS 제공 |
MC딩동은 “대학로의 ‘갈갈이 패밀리’를 거쳐 2006년 SBS 개그맨 공채에 붙었지만 잘 안 풀려 ‘컬투’로 들어가 다시 견습생활을 했다”며 “서른이 된 어느 날 어머니가 ‘대학로에서 사람들만 재밌게 해주지 말고 엄마도 좀 즐겁게 해 달라’는 말을 듣고 그 길로 나왔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오디션을 보고 케이블방송 VJ와 돌잔치, 회갑연 등 닥치는대로 행사를 뛰었다.
두 사람에게 비슷한 시기에 기회가 왔다.
MC딩동은 “지난해 4월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제의가 들어와 무대에 섰는데 너무 떨었는지 2주 동안 연락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3주 만에 무대에 다시 오른 그는 호루라기도 불고 물도 뿌리며 몸을 던졌다. 그리고 한 PD가 그를 불렀다. “내가 ‘러브레터’ 1회부터 하면서 제동이 하는 것도 봤는데 너 고정해도 되겠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 무대에서 1년간 열심히 바람을 잡았다. 그들이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인물은 김제동.
김제동이 ‘윤도현의 러브레터’ 사전 MC를 하던 시절 특유의 입담과 재치가 입소문이 났고 개그콘서트 멤버들까지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며 관람 왔다고 한다.
문종호는 “초대손님으로 온 김제동 선배를 대기실에서 만났는데 자기만의 카드를 알려줬다”며 “보통 개그맨들은 절대 자기 소스를 알려주지 않는데, 처음 본 후배에게 그렇게 다 풀어놓는 걸 보고 또 한번 배웠다”고 고마워했다. ‘내가 가진 카드를 풀어 남이 쓰면 난 또 다른 소스를 개발할 수밖에 없다’는 김제동의 신념은 제자리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도록 사전 MC 후배들에게 귀감이 됐다.
하지만 그렇게 몸을 던졌는데 막상 다른 사람이 그 분위기를 업고 가는 것이 서운할 법도 하다.
문종호는 “처음 무대에 올라갔을 때 ‘쟤는 모야’ 하는 시선으로 보던 사람들이 녹화 중간 내가 다시 올라가면 ‘문종호! 문종호!’라고 외쳐줄 때 전율이 느껴진다”며 억울할 것 없다는 듯 웃었다. MC딩동도 “녹화가 끝나도 내가 무대에 올라가면 관객들이 일어나지 않을 때 정말 행복하다”며 “우리가 메인 MC 보다 무대에 더 많이 올라가고 말도 많이 한다”고 거들었다.
하지만 녹화 내내 분위기가 가라앉는 날이면 두 사람 다 ‘내 탓인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고 한다.
TV에 나오지 않는 탓에 친척들은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고 ‘백수 아들 어떡하냐’며 걱정한다. 녹화 시작 전부터 끝날 때까지 4시간 가까이 무대를 지키며 월 4회 공연을 꽉 채워도 손에 쥐는 것은 고작 60만원 혹은 상품권 몇 장.
하지만 MC딩동은 “생활고 때문에 고민도 많았지만 무대에서 내려올 용기가 없다”며 “방송에 나오든 안 나오든 할 수만 있다면 송해, 허참 선생님처럼 무대에서 늙고 사전 MC 전문양성소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문종호는 “내 이름만 보고도 사람들이 찾아오는 공연장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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