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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한림대 교수의 일본을 보면 한국이 보인다] 일본이 ‘小國’인 이유

관련이슈 심훈 교수의 일본을 보면 한국이 보인다

입력 : 2009-11-25 22:49:25 수정 : 2009-11-25 22: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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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장같은 집… 좁디 좁은 출입구… 협소한 車道…
넓은 것이 버거워 작은 것만 추구
문 I: ‘후쿠오카’,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공통점은?

답 I: 도쿄보다 서울에서 거리가 가깝다는 것입니다.

문 II: 그렇다면, ‘고베’, ‘오사카’, ‘나라’의 공통점은?

답 II: 서울보다 도쿄에서 거리가 가깝다는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의 일본관을 극명하게 엿볼 수 있는 18세기 말 사료. 여지도(輿地圖) 1책의 조선전도편에 나오는 일본 지도로, 아래 왼쪽의 오키나와는 터무니없이 크게 그려지고 오른쪽 일본은 형편없이 축소돼 있다.
일본에 오는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놀라는 것 가운데 하나가 예상외로 늘어진 국토 길이다. 우선, 본 섬에 해당하는 혼슈만 하더라도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거리가 1500km에 달한다. 서울에서 베이징까지 육로로 1300km 정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저 긴 게 아니다. 그렇다고 실제 면적이 좁은 것도 아니다. 한반도의 약 1.5배, 남한의 세 배 반에 해당하는 크기로, 독일과 스위스를 합친 것만큼 넓다. 동남아시아에서도 일본만큼 영토가 큰 나라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이 전부다.

재미있는 점은 그런 일본을 소국으로 취급해온 우리의 인식이 과거부터 한결같았다는 사실. 일본을 일컫던 왜나라 ‘왜(倭)’자는 영토와 인종 모두 작다는 의미에서 작을 ‘왜(矮)’자와 중첩적으로 사용돼 왔다. 조선시대의 고문서에 나오는 일본 지도는 그런 선조들의 대일 인식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실제 크기의 10분의 1 규모로 쪼그라든 지도에서는 그러잖아도 조그마한 ‘태양의 나라’를 무려 100여개 제국(諸國)으로 갈갈이 쪼개져 있는 동토(東土)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영토 대국 일본을 이렇듯 무시하는 한국인의 저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지도만을 놓고 볼 땐 대국에 속하지만, 현실적인 측면에선 오히려 한국보다 작은 나라가 일본이다. 한국이 산악국가라고는 하나, 일본 앞에서는 그야말로 ‘새 발의 피’에 불과한 까닭에서다. 따지고 보면, 일본이야말로 스위스, 네팔과 함께 지구상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지형이 험한 산악국가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가장 높다는 백두산(2744m)은 일본의 고산 클럽에 명함조차 내밀지 못한다. 필자가 찾아본 바, 일본 내에서 백두산이 차지하는 순위는 고도 기준으로 고작 81위. 이마저도 한반도에서는 경쟁자가 없다는 백두산의 이야기일 뿐, 두 번째로 높은 한라산(1917m)에 이르면 일본에서 등수 파악조차 불가능해진다. 더욱이 한라산 같이 완만하고 부드러운 산은 아직껏 연기를 뿜어내며 언제든 폭발할 준비가 돼 있는 열도에선 찾아보기조차 힘들다.

◇다카다노 바바 전철 역에서 내려다 본 와세다로의 모습. 전철 노선이 3개나 교차하는 중형 상권에 속하는데도 촘촘하게 들어선 건물 앞 도로는 왕복 2차선에 불과하다.
일본이 얼마나 험한 산악국가인가는 혼슈 중앙부에 자리 잡은 후지산의 높이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정상까지 고도가 무려 3744m에 달하는 후지산은 미국 본토에서 가장 높다는 캘리포니아 휘트니산보다 500m 정도 낮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중국의 오악(五岳) 가운데 가장 높다는 항산(恒山 2016m) 역시 일본의 후지산에 비하면 단출하기 그지없다. 사정이 그럴진대 3000m가 훌쩍 넘는 산만 21개요, 2000m가 넘는 산들은 280여개 정도(산이 아닌 봉우리 기준으로는 680여개) 된다면 열도의 험준함이 비로소 이해될까? 해서, 19세기 말 일본의 산악지대를 여행한 서양인들이 혼슈 중앙부에 붙여준 별칭이 ‘재팬 알프스’다.

땅덩어리가 넓다고는 하나 국토의 5분의 4 이상이 높고 험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보니 사람들이 평지로 몰리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얼마 되지 않는 평지마저도 지진 때문에 건물을 마음놓고 올릴 수가 없으니 모든 것이 작고 좁아질 수밖에. 일례로, 한반도만 한 혼슈에 살고 있는 인구는 자그마치 1억명. 하지만, 산악지형을 제외한 몇몇 평야지역에 모여 살기에 제대로 된 땅에서 넓게 사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주간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 도쿄 수도권에 공급된 아파트의 평균 전용 면적은 64.5㎡(19.5평)정도. 한국은 서울이 평균 105.8㎡(32평), 용인지역은 132.2㎡(40평)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인들이 대부분 105.8㎡(32평)형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면, 171.9㎡(52평)에서 211.6㎡(64평) 사이의 널찍한 집에 거주하는 게 한국인들이라는 말이다.

그래선지 일본에서는 수납공간을 이용해 좁은 집을 넓게 활용하려는 노하우가 그득하다. 더불어 의뢰인의 좁은 땅에 넓은 집(?)을 지어주는 TV 프로그램 역시 쏠쏠한 인기를 끌고 있다. 얼마나 좁은 땅에 집을 짓기에 TV 프로그램으로 다 방영하고 있을까? 대지 면적 26.4㎡(8평)에 건폐율은 자그마치 60%. 더욱 놀라운 사실은 26.4㎡ 안에 주차장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라고는 하나, 토끼장 주택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일본인들의 숙명이 더욱 실감나는 순간이다.

◇협소한 평지의 낮은 건물에 많은 인구를 수용하려니 기간시설을 비롯해 모든 것이 작고 좁아질 수밖에 없다. 지상으로 다니는 도쿄 전철의 경우 몇몇 대형 환승역을 제외하면 이렇듯 역사가 작고 비좁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본을 소국으로 느끼게 하는 또 하나의 대상이 지하철이다. 지하철 출입구와 계단은 왜 그리 작고 좁은지 우리네로선 그저 입이 벌어질 따름이다. 특히, 출퇴근 때는 역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인파에 몸을 맡긴 채 전동차 출입구와 에스컬레이터에서 끊임없이 줄 서는 지루함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이 엉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전철역 구내 곳곳에는 줄 서는 위치와 계단 오르내리는 방향을 선과 화살표로 세세하게 지시하고 있다. 차도 역시 사정이 같기는 마찬가지다. 웬만한 시내 도로는 왕복 2차선으로 시작해 4차선 안팎에서 끝을 맺는다. 그러니 서울 강북의 광화문로나 강남의 테헤란로, 한강변의 올림픽대로나 강변북로 같은 대로는 천황이 거처하는 황거 근처에서나 만날 수 있는 꿈길일 뿐이다.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일본인들에게 길 넓고 집 넓은 한국이 SF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해서, 집 밖에 나와도 무언가가 앞을 가로막고 있는 듯한 답답함은 한국인들에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일본적인 현실이다. 하지만, 태어나서부터 이런 환경에 익숙한 일본인들에게 넓고 개방적인 장소는 오히려 버겁기만 하다. ‘일본열광’이라는 책을 낸 심리학자 김정운에 따르면 심리학회 파티에 참석한 일본인들이 서양인들에 비해 훨씬 가까운 거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간격이 넓어지면 불편하게 느낀다는 얘기다.

그래서일까? 이어령 교수가 ‘축소 지향의 일본인’에서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일본의 ‘우겨넣기(쓰마리) 문화’는 ‘구겨져 살아야만 하는 일본’에서 자연스레 발생한 결과물이라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은 소국이고, 한국은 대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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