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갈 곳 대기명단 올려야 구해
서민 고통 가중에도 정부선 뒷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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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부터 물가가 들썩이는 가운데 전셋값 일부를 월세로 돌린 ‘반(半)전세’에 이어 사전예약제까지 유행하면서 서민들의 고통이 한층 심화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우리부동산 강상철 소장은 최근 인근 아파트 두 채에 대한 전세계약을 중개했다.
전셋집을 구한 이들은 지난달 11월쯤 사전예약을 맺었으니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린 지 한 달 반 가까이 지난 끝에 이사를 하게 된 셈이다. 강 소장은 “인근 도곡 래미안과 대치센트레빌 모두 집이 없다. 최소한 한 달 반에서 두 달은 기다려야 물량이 나온다”며 “최근 들어 대기기간이 더 길어지는 추세”라고 전했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상계주공아파트도 상황은 마찬가지. H공인중개사 대표는 “사전계약을 맺어도 최소한 2주 정도는 있어야 물량이 나올까 싶다”며 “그나마 강북은 상황이 괜찮은 편이고 강남으로 가면 수개월은 기본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초 전세 사전계약을 맺은 후 지난 주말에야 계약을 맺고 이사한 회사원 김재정(39)씨는 “전세금을 2500만원이나 더 달라고 해서 주변 다른 지역을 찾아봤지만 물량이 없었다”며 “울며 겨자먹기로 크기까지 줄여 93.1㎡(28평)로 옮겼지만 그마저도 한 달 가까이 대기한 후 이사할 수 있었다”고 푸념했다.
이처럼 전세가격을 들썩이게 한 전셋집 품귀 현상은 저금리 기조의 장기화로 촉발됐다. 전세 매력을 잃은 집주인들이 급속히 월세로 바꾸고 덩달아 전셋값이 오르면서 다시 전세기간을 1년으로 줄여 계약하거나 보증부 월세로 전환하면서 물량은 급속히 감소했고 결국 1년짜리 전세계약, 반전세에 이어 사전예약제까지 성행하게 됐다.
국민은행의 4일 주택가격동향 조사를 보면 작년 말부터 이어진 전셋값 급등세가 심상찮음을 알 수 있다.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전셋값 상승률은 전국 평균 7.1%로, IMF 외환위기 이후 집값이 오르기 시작했던 2002년 10.1%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셋값은 집값이 급등한 2006년 6.5% 상승률을 보인 것을 제외하면 줄곧 3% 안팎에서 안정세를 보여왔지만 작년에는 큰 폭으로 오른 것이다. 수도권 전세가격도 6.3% 오른 가운데 서울은 강남이 7.6% 상승하며 평균 6.4% 상승률을 기록했다.
전셋값 고공행진으로 서민 고통이 가중되고 있지만 정부의 실효성 있는 전세대책은 아직까지 전혀 없는 실정이다. “전셋값 상승세는 예년과 다르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하던 국토해양부는 ‘전세대책이 미흡하다’는 여권의 지적이 이어지자 이달 초 당정 협의를 다시 열기로 한 게 그나마 진일보한 것이다.
나기숙 부동산1번지 연구원은 “부동산 비수기인데도 전셋집 찾기가 여전히 힘들다”며 “전세물량 부족 현상은 봄 이사철이 가까울수록 더욱 심화할 것으로 전망돼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서라도 정부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재홍 기자 hog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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