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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돼지 '궤멸'…"제2의 대만될라" 위기감

관련이슈 구제역 확산 '비상'

입력 : 2011-02-21 20:25:54 수정 : 2011-02-21 20:2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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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당국 ‘마구잡이 살처분’ 후유증
339만마리 매몰… 2조원 이상 피해
“이러다가 ‘제2의 대만’이 되는 것 아닙니까.” 지난해 11월29일 경북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축산농가 곳곳에서 이 같은 장탄식이 터져나오고 있다. 구제역으로 ‘궤멸’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가축이 살처분되면서 곳곳에서 축산업 기반 붕괴가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구제역으로 살처분된 가축은 339만3200여마리(소 15만마리(15%), 돼지 323만2000마리(35%),사슴 등 기타 1만1200마리)이며, 이로 인한 보상금 등 재산피해는 2조원이 훨씬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달 7일 인천시 계양구 갈현동 한 젖소농장 매몰지 옆 축사에서 젖소들이 살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전국 가축 사육두수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경기도 내에서만 살처분된 돼지는 1040개 농가에서 165만3000여마리로, 경기도 내 전체 사육두수의 72%를 차지한다. 이는 수도권은 물론 전국의 축산산업 기반을 크게 흔들 정도로 많은 숫자다.

특히 포천의 경우 돼지농가 220여곳 가운데 구제역이 비켜간 곳은 40여곳에 불과할 정도로 사실상 초토화됐다. 강원도에서는 전체 사육돼지의 70% 가까운 38만8000여마리가, 소는 7.8%인 1만9000여마리가 살처분됐다.

철원과 횡성군은 돼지농가의 97%가량이 피해를 보았으며, 충북에서는 음성군 89.8%, 증평군 87.8%의 돼지가 구제역으로 각각 매몰됐다. 이번 구제역 사태로 축산농가의 생산성을 좌우하는 종축(씨가축) 생산 기반도 붕괴 위기를 맞고 있다. 양돈·낙농 농가의 경우 살처분된 모돈(어미돼지)과 종돈(씨돼지)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구제역으로 전국적으로 종돈장 22곳과 돼지 인공수정센터 2곳 등 24곳에서 17만4800여마리의 가축이 살처분돼 매몰됐다.

특히 구제역으로 가축을 살처분한 종돈장이 정상적인 영업을 재개해 안정적인 품질의 가축을 확보하는 데는 2∼3년이 걸린다는 것을 감안하면 씨가축 확보에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축산농가들은 우리도 1997년 발생한 구제역으로 축산기반이 완전히 붕괴된 대만의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대만은 1997년 3월 돼지 구제역이 발생해 전체 돼지 1068만마리의 40% 가까운 385만마리를 살처분하고 41조원의 손실을 내면서 축산기반이 완전히 무너져 지금까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자자했던 ‘세계적인 양돈 수출국가’라는 명성도 함께 빛이 바랬다.

구제역으로 축산기반 붕괴가 현실화된 것은 정부의 ‘마구잡이 살처분’ 방식이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안동에서 처음으로 구제역이 발생하자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발생농가 반경 3㎞ 이내에 있는 모든 가축을 살처분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발생 초기에는 의심 신고가 접수되면 양성 판정을 받기도 전에 예방적 차원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인근 가축들을 미리 살처분해 매몰한 것이다.

이 같은 ‘마구잡이 가축 살처분’의 후유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축산농가 곳곳에서 터져나오자 발생농가 반경 500m 이내로 살처분 기준을 완화했고, 백신접종이 시작된 지난해 12월25일부터는 발생 농가 가축만 살처분하는 방식으로 수정했다.

구제역을 틈타 미국산 쇠고기 수입도 크게 늘어 축산산업 붕괴에 기름을 붓고 있다. 축산농가의 가축 사육 의욕을 떨어뜨려 축산농의 전업을 부채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정복(왼쪽에서 두번째)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지난 19일 경북 경주시 농협중앙회 경주시지부에서 열린 가축방역 및 축산선진화 방안 토론회에서 축협조합장과 교수, 수의사들의 건의 사항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미국육류수출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수입된 미국산 쇠고기는 8만4822t으로 전년 대비 42.6% 증가했다. 지난해 전체 쇠고기 수입 증가율 16.2%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특히 구제역이 전국으로 확산되던 지난해 12월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량이 주당 평균 2000t 수준으로 높아졌고, 연말에는 주당 2500t에 육박할 정도로 수입이 크게 늘었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은 최근 “구제역이 일단락(진정)되더라도 국내 축산물 소비 위축이 불 보듯 예견되며, 그 빈자리를 수입 축산물이 대체한다면 축산농가들이 재기 불능에 빠질 위험이 높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번 구제역 사태를 계기로 살처분하다 확산 정도에 따라 백신 처방을 하는 구제역 방역방식을 발생 초기부터 백신을 접종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아예 ‘백신접종 청정국’으로 정책을 바꿔 일정기간마다 백신 접종을 해 이번과 같은 구제역 재앙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구제역 청정국을 ‘백신 비접종 청정국’과 ’백신 접종 청정국’으로 나누고 있다. 백신접종청정국은 백신을 계속 쓰면서 최근 2년 동안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았고, 1년간은 혈청검사 등을 통해 우리나라에 구제역 바이러스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면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

외국에서는 남미의 대표적인 낙농국 우루과이가 2001년 구제역 백신을 접종한 이후 지금까지 백신을 쓰면서 청정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지원선 선임기자 president5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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