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서태지의 10년 전 팬픽(팬이 연예인을 주인공으로 쓴 소설)이 뒤늦게 회자되고 있다.
지난 1997년 결혼식을 올린 서태지를 상대로 위자료 및 재산분할 청구 소송을 낸 이지아가 2006년 이혼을 청구하면서 재산권을 포기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새 국면을 맞은 가운데, 두 사람에 관련된 과거가 속속히 밝혀지며 그 어떠한 사건보다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2001년 2월부터 5월까지 서태지 팬페이지에 연재됐던 팬픽 ‘나 서태지, 한 여자를 사랑합니다’가 다시금 회자가 되는 이유는 이 글을 ‘라푼젤’이라는 필명으로 연재한 사람이 이지아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총 71편으로 이뤄진 이 소설은 연재 당시 팬들 사이에서도 너무나 사실적이고 자세한 묘사 등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때문에 당시에도 작가 및 여주인공이 실제 인물이 아닌지 의심을 받았을 정도. 또한 팬픽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의 이름은 ‘시아’다. 이지아는 지난 1997년 1월 미국 애리조나주 법원에서 이름을 김상은에서 시아 리(Shea Lee)로 개명한 바 있다.
이 소설은 서태지가 지난 1996년 은퇴 후 미국으로 갔을 때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서태지의 열렬한 팬이었던 주인공 시아는 가수 데뷔를 위해 YG패밀리의 수장이자 전 서태지와아이들 멤버 양현석과 만나던 중 우연히 서태지를 소개받는다. 대스타로만 바라보며 호기심을 느낀 시아는 갈수록 서태지의 인간적인 면모를 하나둘 알게되고 어느새 연민과 사랑에 빠진다. 서태지 또한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결국 둘은 사랑을 맹세한다.
소설은 두 사람이 미국에서 함께 살면서 사랑을 키우고 또한 의견 차이로 다투는 일상을 소상히 그려내고 있다. 양가 부모님께 허락을 받는 과정과 자동차 여행으로 그랜드캐년및 디즈니랜드 등을 방문하는 이야기, 락밴드 콘의 콘서트를 관람하며 고생했던 경험담이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여주인공은 서태지가 음악인으로서 고민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다독여주지만, 음악 작업에 몰두하면 한달 가까이 얼굴도 볼 수 없는 상황에 점점 지쳐간다. 처음부터 여주인공은 머지않아 서태지와 헤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그 여정은 고되고 슬프기만 하다. 시아는 서태지에 대해 ‘자신 속에서 수없이 혼돈하고 쓰러지는 그는 황폐한 사막 같다’며 ‘수없이 많은 또다른 자아를 학대하고 쓰러뜨리며 결국 멋지고 강한 하나의 자아를 우뚝 세운다’라고 설명한다.
연재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 팬픽이 뒤늦게 회자되는 이유는 곳곳에 의심스러운 정황이 포착됐었기 때문이다. 2001년 2월에 쓴 글 중에는 서태지가 2001년 4월에 미국으로 출국을 하는 내용을 쓴 부분이 있는데, 실제로 서태지가 2001년 4월에 미국으로 출국하자 한 팬이 '어떻게 서태지가 출국할 것을 미리 알고 글로 썼느냐'는 질문을 댓글로 남기기도 했다.
더군다나 필명인 '라푼젤'은 성 안에 오랫동안 갇혀 살던 공주를 왕자가 구해주는 동화속 여주인공인 만큼 서태지의 여자로서 살아가는 심경을 대변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소설이 마치 작가의 기억을 기록한 것 같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가운데, 글쓴이는 마지막 글을 연재하면서 긴 장문의 소감을 전했다. 그는 “나름대로 머릿속에 있던 스토리를 차례차례 잘 풀어나간것 같다. 특별히 쥐어짜낸 스토리도 없었고, 생각한 스토리를 풀어가는 과정이였기 때문에 여러 의견에 쉽게 휩쓸리지도 않았었다”며 “읽는분들 각자가 생각하시는 스토리에 못미친 부분도 있었겠지만, 나름대로 제 스토리를 푼것 뿐이니까요. 무료했던 제 삶도 이제 또 무언가 시작의 기미를 보이는것 같다. 좀 신중한 여행을 하려고 한다”고 글을 올렸다.
일각에서는 이번 이지아의 재산 분할 소송 건을 두고 이해가 가지 않았던 부분들이 이 팬픽으로 퍼즐 맞추기가 이뤄지고 있다. 이지아는 끊임없이 서태지에 대한 관계를 자신만의 언어로 알렸고, 이러한 정황이 뒤늦게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서태지가 그렸던 그림을 이지아가 2009년 방송에서 비슷하게 그렸다는 점, 이지아가 집을 공개하면서 베이스기타를 잘 보이는 방안에 전시해 놓았다는 점(서태지는 베이시스트 출신이다), 레드카펫에서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드레스에 'Leejiatoes(이지아 토즈)'라는 문구를 새겼는데, 이는 거꾸로 하면 서태지의 이름이 된다는 점, 2009년 서태지의 콘서트장을 찾아 관람한 점 등이 그것이다.
이지아가 지난 2006년 이혼을 청구하면서 재산권을 포기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새 국면을 맞은 이번 사건에서 가장 의문인 점은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소송을 제기했느냐이다. 일각에서는 2006년 이혼이 성립됐음에도 뒤늦게 무리한 소송을 한 것은 ‘알리기용’ 제스쳐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비밀 사랑에 대한 댓가, 즉 일종의 보상 심리가 작용했다는 얘기다.
한편, 서태지와 이지아는 가수와 팬으로 처음 만나 사랑을 키우다 지난 1997년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지아는 지난 1월 서태지를 상대로 위자료 및 재산분할 청구소송을 제기하며 두 사람의 결혼과 이혼 사실이 세간에 알려졌다.
/ 두정아 기자 violin8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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