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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사회·동반성장 맞물려 또하나의 '대기업 군기잡기'?

입력 : 2011-04-26 23:04:39 수정 : 2011-04-26 23: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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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건의 파장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는 자본시장의 지축을 뒤흔들 대형 변수다. 연기금이 더 이상 수익만 추구하는 재무적 투자자에 머물지 않고 경영에 간섭하기 시작하면 그 파장은 섣불리 예단키 어렵다. 기업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강화하고 주주가치를 높일 것이란 긍정적 기대감이 있는 반면에 신관치로 시장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기업가치를 떨어뜨릴 것이란 우려가 교차한다. 정권의 입맛, 편의에 따라 기업을 옥죄는 정치적 악용 가능성도 제기된다. 논란과 파장이 큰 만큼 실현 가능성은 장담키 어렵다. 청와대 김희정 대변인은 “청와대와 사전 논의된 적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정부 관계자도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일단 이를 건의한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학자로서의 소신’으로만 치부한 것이다. 여론을 떠보려는 애드벌룬 성격이 짙어보인다.


대통령 직속기구인 미래기획위 곽승준(가운데)위원장이 26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제3차 미래와 금융정책 토론회’ 장소로 입을 다문 채 걸어가고 있다.
송원영 기자
대기업에 칼 빼든 곽승준

곽 위원장이 26일 연기금 주주권 행사 강화를 건의한 것은 이명박(MB) 정부가 대기업을 향해 새로운 칼을 빼든 것으로 해석된다.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도 결국 초과이익공유제, 강도 높은 세무조사 등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임기말 권력누수 현상) 차단을 위한 ‘대기업 군기잡기’의 맥락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엔 현재의 대기업과 시장을 바라보는 정부의 부정적 시선이 깔려 있는 듯하다. 미래기획위가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 필요성을 언급하며 내놓은 대기업 평가도 ‘거대한 관료주의’, ‘문어발식 확장’, ‘과점체제’ 등 부정적인 표현 일색이다. 곽 위원장이 이날 기조연설에서 “우리 경제는 아직 노블레스 오블리주 구현을 위한 성실납세, 동반성장 등이 취약하고 정부의 요구가 있어야 마지 못해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는 실정”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구체적으로 ‘공정사회’에 기반한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에 미온적이면서 중소기업 업종으로 문어발식 확장에 치중하고,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면서 안으로 막대한 현금(내부 유보금)을 쌓고도 투자와 성장동력으로 연결하지 못하는 것이 정부로서는 불만스런 대목이다.

곽 위원장이 이날 삼성경영의 투명성 문제, 신한금융의 경영권 분쟁, 포스코와 KT의 오너십 부족, 방만 경영을 입에 올린 것은 대기업에 대한 깊은 불신의 표현인 셈이다.

이건희, 정몽구 누르는 국민연금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은 적립금의 17%인 약 55조원을 국내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만 139개사에 달한다.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10위권 상장사를 보면 국민연금의 힘은 더욱 뚜렷하다. 2010회계연도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국민연금은 삼성전자 지분 5%를 보유하고 있어 삼성생명(7.47%) 다음으로 지분율이 높다. 이건희 회장은 특수관계인과 함께 의결권 있는 지분을 17.59% 보유했지만 개인 지분은 3.38%에 그친다. 시가총액 2위인 현대차에도 국민연금 지분이 5.95%로 정몽구 회장(5.17%)보다 더 많다. 포스코는 보통주 5.33%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아예 최대주주다. 2006년 2월 SK텔레콤에 최대주주 자리를 내주기도 했지만 2007년 1월 지분을 늘려 되찾았다. 그밖에 현대모비스(5.00%), LG화학(5.38%), SK이노베이션(6.59%)의 지분도 5% 넘게 보유하고 있다. 금융사로서는 하나 금융지주, KB금융지주의 1대 주주, 신한금융지주의 2대 주주에 올라 있다.

양날의 칼… 연기금 주주권 강화

연기금 주주권 강화는 ‘양날의 칼’이다. 잘 쓰면 적을 베는 성과를 거둘테지만 잘못 쓰면 자신을 베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우려의 핵심은 시장 자율을 해치는 ‘관치의 폐해’다. 정유사들이 타의로 휘발유값을 내렸고, 초과이익공유제가 논란을 일으키는 환경에서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까지 더해지면 기업들은 정부 입김에 더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연강흠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치력이 개입되면 주주가치 차원이 아니라 기업 압박 또는 ‘경영자 길들이기’가 될 수 있다. 주주가치에 나쁘지 않음에도 정치적으로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행사할 수 있고, 또 다른 관치의 통로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기업 이미지 개선과 고객 만족도 상승으로 이어져 기업가치를 증대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김태준 금융연구원장은 “연기금은 다수의 가입자와 자본을 확보해 사회적 책임투자를 실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주체”라며 “다수의 연구 결과, 좋은 지배구조가 기업의 연구개발과 혁신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5% 지분만으로 그룹 총수를 넘어서는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현실론도 있다. 올해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 이사 선임안에 반대했지만 결국 통과됐다.

선진국은 어떻게

선진국의 연기금은 주주권 행사에 적극적이다. 미국 최대 연기금인 캘리포니아주 공무원연금 캘퍼스, 미 최대 사학연금인 교직원연금보험(TIAA-CREF), 네덜란드의 공무원연금인 ABP 등은 의결권 행사, 경영자 정례 협의, 이사회 후보 추천 등 주주 제안, 투자자 연대, 지배구조 펀드에 운용 위탁, 주주소송, 입법운동 등을 행사하고 있다.

이상혁·김청중·이귀전 기자 nex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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