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왕서방은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였다. 1930년대에 김정구씨가 부른 가요 ‘왕서방연서’는 돈만 밝히는 중국인의 모습을 희화적으로 묘사했다. 노래에서 중국인 비단장수 왕서방은 기생 명월에게 흠뻑 빠졌다가 “명월이하고 안 살어 돈이가 많이 벌어 띵호와”라며 결국 돈으로 돌아간다. 김동인의 소설 ‘감자’에 등장하는 ‘왕서방’도 비정한 중국인이다. 소설에서 주인공인 시골처녀 복녀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왕서방의 정부가 되는 신세가 된다. 그러나 왕서방은 복녀에 싫증을 느끼고 다른 여성과 결혼한다. 배신감에 눈이 먼 복녀는 왕서방의 신방에 뛰어들었다가 왕서방에게 살해된다. ‘감자’의 왕서방은 식민지 현실과 타락한 인간성을 폭로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조연이다.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큰 손으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의 노동절(5월 첫째주) 기간 현대백화점 은련(銀聯) 카드 매출 신장률은 올 들어 전년 대비 무려 117%였다고 한다. 은련카드는 중국의 최대 신용카드 회사다. 롯데면세점은 전체 외국인 매출 가운데 중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올 들어 26%까지 늘었다. 2007년에는 6%에 불과했다. 왕서방의 이미지가 바뀌고 있다. 과거 왕서방은 인색하고 돈만 아는 중국인을 연상시켰다. 이제 왕서방 하면 큰 손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아졌다.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세계 경쟁이 격화된 지 오래다. 중국인 해외관광객의 왕성한 구매력은 유명하다. 요즘 해외여행에 나서는 중국인 대다수는 상당한 부자다. 우리나라 해외여행 초창기 때도 그랬다. 중국의 독특한 선물문화와 위안화 강세도 주목해야 한다. 새로운 얼굴을 한 왕서방을 잡기 위해 국가적으로 좀더 고민해야 한다.
전천실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