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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닦고 덕을 세우는 그 기상 새긴다

입력 : 2012-01-09 17:48:47 수정 : 2012-01-09 17:4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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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원·김규진 난죽전
김응원의 ‘석란도’
대나무는 예로부터 곧은 절개뿐 아니라 죽보평안(竹報平安)이라 하여 평안을 가져다 주는 대상으로 여겼다. 속됨을 치료하는 의속(醫俗)의 뜻도 가지고 있다. 난(蘭)은 깊은 숲 속에 나서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향기를 뿜어, 곤궁한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고 도를 닦고 덕을 세우는 군자의 모습이라고 공자는 말했다. 풍파가 예상되는 올 한 해 난죽의 정신이 절실할 듯싶다. 11일∼2월19일 학고재에서 열리는 ‘소호 김응원과 해강 김규진의 난죽전’은 일제강점기 근대서화를 통해 오늘을 반추해 보는 전시다.

소호(小湖) 김응원은 1911년 근대적 미술학원으로 경성서화미술회 강습소가 개설될 때 조석진, 안중식과 함께 지도교사로 묵란법을 가르쳤다. 1918년 서화협회를 창립할 때에도 13인의 발기인으로 참여한 인물이다. 흥선대원군과 교분이 두터워 석파란의 대필자로도 이름날 정도로 묵란에 뛰어났다. 그의 묵란은 대원군의 필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필선이 매끄럽다. 비교적 순탄했던 삶을 엿보게 한다. 이에 비해 대원군의 난은 먹의 농담 변화를 엿볼 수 있다, 갖은 풍상을 겪은 삶의 궤적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해강(海岡) 김규진은 다양한 형태의 대나무를 자유분방하게 잘 그렸다.

특히 굵은 통죽에 빼어났다. 조선미술전람회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던 그는 1885년부터 8년간 청나라에, 1902년부터 1903년까지 일본에 머물며 현지 서화를 접할 기회를 가졌다. 1915년엔 서화연구회를 창설하여 문인화, 서화, 사군자 등을 가르쳤다. 이때 서화교습용 교과서로서 ‘해강난죽보’를 발간하여 당대 묵죽과 묵란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 등에 모두 능해 금강산 바위에 ‘彌勒佛(미륵불)’, ‘天下奇節(천하기절)’ 등의 글자와 많은 사찰의 현판 글씨를 남겼다. 영친왕 이은의 서법 사부로 창덕궁에 벽화를 남기기도 했다. 그의 아들 청강 김영기는 중국에 유학 당시 치바이스(齊白石·1860∼1957)에게 그림을 배웠다. 최근 경매에서 700억원대에 팔린 치바이스와 같은 시기를 살았던 김규진의 10폭 통죽 병풍이 1억원대라는 점은 많은 것을 생각케 해준다.

이번 전시작품 대부분은 가격이 몇백만원대 수준이다. 신진작가의 작품 값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근현대 서화의 재평가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 전시는 이를 환기시켜 주는 자리다. 이번 전시작들은 근래 일본에서 구입해 들여온 것들이다. (02)720-1524

편완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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