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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소용돌이에 선 로미오와 줄리엣

입력 : 2012-12-20 21:54:17 수정 : 2012-12-20 21:5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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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로미오와 줄리엣’…中 여류연출가 톈친신 연출
로맨스에 문화혁명기의 이념적 갈등 더해… 더 처절하고 비극적 사랑 그려
셰익스피어 원작 ‘로미오와 줄리엣’은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알 만한 고전 중 고전이다. 시대적, 문화적, 이념적 배경 지식 없이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연애 비극’이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최초로 해외에서 공연됐고, ‘햄릿’과 더불어 가장 빈번히 무대에 오르는 작품이기도 하다. 더 식상할 수도, 더 지루할 수도 있는 이야기다.

국립극장이 올해 마지막 작품으로 선택한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 식상한 줄거리에 중국의 문화대혁명이라는 우리에게 익숙하고도 생소한 시대적 배경을 삽입해 이전과는 다른 색깔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탄생시켰다.

문화대혁명은 1966∼1976년 중국에서 마오쩌둥 사상에 맹목적으로 전도된 젊은이들이 주축이 돼 일으킨 만민에 대한 전쟁이었다. 홍위병이라 불리는 이들은 마오 사상에 반하는 인물이라고 생각되면 무조건 배척하고 공격했다. 로미오는 가장 극단적인 ‘공련파’ 홍위병의 선봉장이고, 줄리엣은 이들과 대립하는 보수적인 ‘전사파’ 홍위병 가문의 딸이다. 중국의 사회적 비극과 순수한 두 남녀의 끓어오르는 사랑이 만나는 지점에서 슬픈 사랑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셰익스피어 원작에서 두 남녀는 사랑 때문에 가문을 저버리지만, 문화혁명기의 주인공들은 이념적 갈등까지 겪으면서 두 사람의 고뇌와 비극은 더욱 처절해진다. 강필석이 목숨 바쳐 추종하는 이념과 죽음과 맞바꿀 만큼 사랑하는 여성 사이에서 고뇌하는 로미오로 분했다. 줄리엣은 전미도가 맡아 싱그럽고 발랄한 소녀의 이미지를 잘 표현했다. 다만,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고뇌와 절망을 표현하는 비장미는 다소 아쉬웠다. 줄리엣 유모 역의 고수희와 로미오의 스승 료 선생 역의 김세동은 명성에 걸맞은 차진 연기로 작품에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무대 세트도 돋보였다. 무대 위에는 커다란 지붕들이 산처럼 솟아 있고, 전봇대 사이사이를 전선들이 이어주고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 아슬아슬한 지붕과 줄리엣 방 창가에서 위태로운 사랑을 속삭이고, 어린 홍위병들은 전선을 타고 지붕 사이를 넘나들며 끓는 혈기를 표출한다. 전신주를 타고 비상과 하강을 반복하는 이미지는 가여운 청춘의 그것과도 닮았다.

한·중 수교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국립극단과 중국국가화극원의 합작공연으로, 중국국가화극원의 유일한 여류 연출가 톈친신(44)이 연출을 맡았다. 톈친신은 1999년 ‘생사의 장(生死場)’으로 중국 문화부 대상, 제6회 예술제 대상 등 각종 상을 휩쓸었으며, 국내에서는 2006년 극단 미추 창단 20주년 기념작 ‘조씨고아’로 호평을 받았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문화혁명기가 주는 극단적인 이미지와 인생에서 가장 불안하면서도 뜨겁게 빛나는 청춘의 이미지가 부합한다고 생각했고, 이것을 ‘로미오와 줄리엣’ 안에 녹여 넣어 시공간을 넘나드는 청춘의 사랑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29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하고, 내년 10월 ‘아시아연극페스티벌’ 오프닝 작으로 올라 중국 베이징, 상하이, 쿤밍에서도 공연할 예정이다. 영어와 중국어 자막이 있어 외국인 관람도 가능하다. 2만∼5만원. 1688-5966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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