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기조 천명… 경기 부양 나서
달러보다 엔화 약세가 더 큰 문제…車·조선 등 경쟁업종 타격 불가피 “어, 어, 어….” 새해 문을 열자마자 금융회사 딜링룸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새해 벽두부터 환율이 곤두박질했기 때문이다. ‘원고’에 가뜩이나 조마조마했던 수출업계에서도 비명이 터져 나온다. 무너진 달러당 1070원 선. 중소기업의 환율 마지노선이 깨진 지도 오래다.
한국 경제에 ‘환율 비상’이 걸렸다. 극심한 내수부진 속에서 겨우 수출로 연명하는 우리 경제에 환율 하락은 대형 악재다. 원화가치의 상승(환율 하락)은 세계 주요 통화 중에서 가장 높다. 다른 경쟁국에 비해 우리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그만큼 불리해졌다는 의미다. 환율 급락은 새해 우리 경제의 회복을 가로막는 뇌관으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
◆원화가치 상승 주요 통화 중 최고
외환시장 개장 첫날인 2일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4.6원 내린 달러당 1066.0원에 장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까지 외환당국이 힘겨운 방어전 끝에 지킨 환율이 1070원이었다. 그러나 지지선은 새해 시장이 열리면서 맥없이 무너졌다. 이날 종가는 지난해말(28일)보다 7.1원 떨어진 1063.5원이었다. 원화 강세는 해를 넘어가며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는 지난해 7.58% 올라 주요국 통화 중에서 절상률이 가장 컸다. 유로에 비해서는 3.7배, 중국 위안화보다는 5.4배나 가치가 높아졌다. 반면 엔화는 달러화 대비 10.56%나 가치가 떨어졌다.
원화 강세는 기본적으로 선진국들이 경기 부양을 위해 무제한으로 돈을 푼 영향 탓이다.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EU)은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경쟁력을 끌어올리는 환율작전에 돌입한 상태다. 특히 미·일 두 나라는 사실상 제로(0)에 가까운 저금리 기조를 천명했다. 미국은 이미 지난해 9월 시중에 돈을 살포하는 3차 양적완화에 들어갔다. 이어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지난해 12월 매달 450억달러 규모의 장기 국채를 매입하는 식으로 ‘돈다발’을 풀겠다고 선언했다.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자민당 총재는 지난달 총선 이전부터 통화완화정책과 함께 엔화 약세를 통해 경기부양에 나서겠다고 말해 왔다. 총리 취임 후에도 일본은행에 “돈을 더 풀라”고 압박하고 있다. 아베 정부는 자국 기업의 수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엔화를 달러당 100엔 수준까지 용인하겠다는 뉘앙스도 풍겼다.
새해 금융시장 첫 개장일인 2일 코스피가 2000선을 돌파하고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070원 선 아래로 급락했다. 이날 서울 중구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한 직원이 밝은 표정으로 외환시세 모니터를 보고 있다. 이재문 기자 |
전문가들은 앞으로 원화 강세가 지속돼 1040원대도 멀지 않은 것으로 관측한다. 12개 해외투자은행(IB)은 원·달러 환율이 올 3분기 1048원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10개 선물회사와 은행은 올 4분기 원·달러 환율이 1041원 선까지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다. 환율 하락 속도가 빠르다 보니 일각에서는 기존 전망치를 수정하려는 움직임도 나온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상반기에 환율이 1020원선까지 떨어질 수 있다”며 “앞으로도 미국이나 일본이 강력한 부양책을 쓰며 유동성을 풀면 원화 강세가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달러보다 엔화 약세로 인한 원화 강세가 더 큰 문제다. 서울 외환시장 가격 기준으로 원·엔 환율은 2011년 말 100엔당 1485.16원에서 작년 말 1247.50원으로 한해 동안 237.66원(16%)이나 떨어졌다. 엔화 대비 원화가치는 19.05%나 높아졌다. 달러화 대비 원화의 절상률(7.58%)의 2.5배도 넘는다.
이에 따라 우리 경제를 이끄는 수출은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연구원(KIET)에 따르면 원·엔 환율이 10% 하락하면 국내 수출은 2∼6% 감소한다. 업종별로는 한·일 간 경쟁이 치열한 자동차, 조선의 피해가 크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는 원·엔 환율이 1% 하락할 경우 자동차 수출액은 1.2% 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올해 3% 경제성장 달성에 차질이 빚어질 게 분명하다.
정호성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아베의 엔저(円低) 정책으로 파생된 원화 강세가 올해 우리 경제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신동주 기자 rang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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