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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에세이] 날로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전화, 직접 받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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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5-14 14:42:53 수정 : 2013-11-04 13: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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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 저희가 이번에 저금리로 국민행복기금을 빌려드리고 있거든요.”

얼마전 농협캐피탈이란 곳에서 전화를 한 통 받았다. 평소 대출 권유 전화가 오면 늘 “필요없습니다”라며 그냥 끊곤하는데, 이날은 상담원이 ‘국민행복기금’ 이야기를 하길래 무슨말인가 싶어 들어봤다.

친절한 목소리의 여성 상담원은 “고객님, 요즘 뉴스에서 국민행복기금 얘기 들어보셨죠?”라며 연 3.7%의 금리로 국민행복기금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국민행복기금은 1억원 이하의 신용대출을 받아 6개월 이상 연체한 이들의 빚을 탕감해주는 제도지, 대출 상품이 아니다. 대체 어떻게 사람들을 속이는건가 싶어 대화를 계속해보기로 했다. “국민행복기금을 ‘빌려’준다고요?”라고 묻자 상담원은 “네. 고객님 국민행복기금 모르세요?”라고 되물었다. “국민행복기금은 대출상품이 아니고 장기연체자들 빚 탕감해주는 정책 아니냐”는 말에 그녀는 ‘피식’ 웃으면서 “고객님. 인터넷에서 국민행복기금 한번 쳐보세요. 국민행복기금은 세가지 종류가 있거든요. 빚 탕감해주는 정책 외에 저금리로 대출해주는 혜택도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그런건 처음 들어본다”고 하자 그녀는 답답하단 목소리로 “요즘 뉴스도 안보세요?”라고 쏘아붙이기까지 했다.

요즘 국민행복기금 사칭 전자금융사기(보이스피싱)가 기승을 부린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지만 막상 받아보니 그들의 수법은 생각보다 더 치밀했다. ‘뉴스나 인터넷에서 국민행복기금 안 들어봤냐’면서 당당하게 몰아붙이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서민 도와주는 대책이라고 뉴스에서 본 것도 같은데…’라며 속아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전화가 왔었다는 말을 하자 “국민행복기금이 뭔지 자세히 모른다”면서 “까딱하면 속을 것 같다. 조심해야겠다”는 반응이 많았다. 국민행복기금이 나오자마자 발빠르게 새로운 수법을 내놓는 범죄자들의 신속함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사실 이런 대출 전화는 요즘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하다. ‘대출 권하는 사회’란 말이 나올 정도로 하루에도 몇통씩 전화가 걸려오기 일쑤다. 하도 많이 걸려오다보니 오히려 경계심이 없어진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설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이란 말이야?”란 생각이 든다는 것. 하지만 대출 권유 전화는 거의 모두 사기 유인 전화다. 여기에 국민행복기금 사칭처럼 각종 새로운 수법이 나오다보니 스스로 보이스피싱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상담사의 화려한 언변에 그야말로 ‘눈뜨고 코 베이는’ 것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성인이 하루에도 몇번씩 범죄에 노출되고 있지만 경찰이나 금융당국도 범죄 수법 홍보 외에 뾰족한 대책은 없는 상황이다. 한 경찰은 “대체 보이스피싱은 언제 사라지냐”는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안 당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무도 믿지 말라”고 덧붙였다. 삭막해보이는 이 말이, 보이스피싱 예방의 ‘지름길’이란다. 매일 새로운 수법을 들고 나타나는 범죄자들에게 속지 않기 위해서는 결국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보이스피싱 걱정없이 살 수 있는 날은 언제 올까. 안타깝지만 아무래도 당분간은 힘들듯 하다. 그러니 대출을 해주겠다는 문자나 전화가 오면 ‘무조건’ 의심하고 스스로를 지키는 수밖에 없겠다. 지금 이순간에도 호시탐탐 먹잇감을 노리는 그들에게서 걸려온 전화벨은 울리고 있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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