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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 우월 의식에 여성을 '乙' 대하듯…

입력 : 2013-05-21 16:02:13 수정 : 2013-05-21 16: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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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의 전 차관·검사 성추행 등
잦은 스캔들에 국민들 불신 심화
공직자윤리법 성추문 내용 없어
성의식 지나친 관대함도 문제로
윤창중 사건서 사실상 ‘분수령’
고위직 교육강화 등 대책 시급
청와대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으로 고위공직자의 성평등 의식 부재에 대한 국민의 질타가 거세다. ‘윤창중 사건’은 미국 코미디 방송 프로그램에서 패러디로 등장해 재외 동포를 비롯한 우리 국민을 ‘멘붕’에 빠뜨렸다. 고위공직자의 성추행 사건은 국격 실추뿐 아니라 정치 불신을 심화한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근민 제주지사
때와 장소 불문… 정치권의 성 스캔들

고위공직자의 성 스캔들은 당분간 한국 사회를 뒤흔들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윤창중 사건은 미국 수사 당국의 조사 결과에 따라 재판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국내 상황도 심상치 않다. 윤중천 전 중천산업개발 회장의 사회 지도층 성접대 의혹 사건은 ‘판도라 상자’와 같다.

연루자 명단에 김학의 전 법무차관뿐 아니라 공기업 임원들도 오르내리고 있다. 경찰 수사과정에서 최음제가 사용됐다는 여대생의 진술도 나왔다고 한다.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일들이 실제 뉴스에서 다뤄지고 있는 것이다.

고위공직자의 ‘일탈’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아니 갈수록 심해지는 경향도 엿보인다. 예전에 성희롱, 성추행이 술자리에서 주로 발생했다면 최근에는 간담회나 강연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성희롱 진정사건 백서’에 따르면 성희롱이 발생한 장소는 사업장 내가 절반인 50.3%에 달했다. 이어 회식 장소 19.6%, 교육 장소 4.2%로 나타났다.

가해자와 피해자 간에는 ‘갑을 관계’를 의미하는 상하 관계가 61.1%로 가장 많았다. 다음은 직장 동료 관계가 8.8%, 서비스 제공·수혜 관계가 8.4% 순이었다.

대표적인 일탈 사례


윤 전 대변인이 칼럼을 통해 공개 비난했던 무소속 김형태 의원의 성추문 사건은 지난해 19대 총선 당시 정치권을 뜨겁게 달궜다. 

김 의원은 사망한 동생의 아내 성폭행 의혹사건에 휩싸이면서 새누리당을 탈당했고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이다. 윤 전 대변인은 새누리당을 ‘색(色)누리당’이라고 공격했다.

2010년 7월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강용석 의원은 방송국 아나운서 지망 여대생에게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가 당에서 제명됐다. 그는 모욕·무고 등의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아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2002년 민주당 소속이었던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집무실에서 여성 직능단체 간부를 성추행한 혐의로 여성부 남녀차별개선위원회의 성희롱 판정을 받았다. 그는 여성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으나 대법원에서 패소 판결을 받았다.

최연희 前 국회의원
성평등 의식 부재… 처벌수위 낮고 정계복귀 무사


무엇보다 고위공직자의 성평등 의식 부재가 일탈 원인으로 꼽힌다. 여성을 약자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해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게 하는 농담과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권력과시욕’이나 ‘완장심리’ 등 가진 자의 ‘우월의식’이 작용한 것으로도 보인다.

이민경 21세기 서울여성회 사무국장은 20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지위로 보는 성평등 의식이 없고 고위공직자라는 ‘갑’이 여성을 ‘을’로 대하려는 태도가 불미스러운 상황을 반복시키는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2011년 한 강연에서 관리 부정부패의 예를 들면서 “춘향전이 뭔가. 변사또가 춘향이 따먹으려고 하는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2010년 당시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기자들에게 걸그룹을 화재로 삼아 이야기하다가 “요즘 룸(살롱)에 가면 오히려 자연산만 찾는다고 하더라”라고 발언했다가 대국민 사과문까지 발표했다.

성 스캔들을 일으키더라도 정치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점도 성평등 의식 부재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사무총장 시절 여기자 성추행 사건을 일으켜 탈당한 무소속 최연희 의원은 2007년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됐지만, 항소심에서 벌금 500만원에 선고유예 판결을 받으며 의원직을 유지했다.

당시 여성단체와 야당이 반발했지만, 그는 다음해 18대 총선에서 출마해 4선 의원이 됐다.

윤창중 前 대변인
미국 정치권에도 최근 유사 사례가 나타났다. 불륜과 성추문으로 곤욕을 치렀던 정치인이 최근 부활을 선언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8년간 불륜관계가 드러나면서 이혼까지 겪은 마크 샌퍼드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가 연방 하원 재보선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다. 샌퍼드 전 주지사는 2일(현지시간) 공화당 후보 경선에서 57%의 득표율로 본선에 진출했다. 전문가들은 시급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김기린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치팀장은 “고위공직자의 기강해이와 여성을 막 대하는 우리의 정치문화가 문제”라며 “다시는 이런 일들이 없도록 (윤 전 대변인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공무원 복무규정과 윤리강령에는 면책 사유에 성희롱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정치권에서는 고위직일수록 성폭력 예방교육을 강화하는 내용의 이른바 ‘윤창중 방지법’ 발의가 추진되고 있다.

이 사무국장은 “크게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지만 고위공직자 성폭력 예방 교육이 형식화된 상황에서 이를 법제화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김달중·김채연 기자 da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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