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혁당 결성 때도 주체사상 채택
국정원 “의원때도 달라진 게 없어” ‘김일성은 절세의 애국자이자 우리의 앞길을 밝혀준 영원 불멸의 등불.’
1985년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중국어과 재학 시절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학내 이념서클 ‘가면극연구회’ 동지들과 나눈 생각 중 하나다.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인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결성 혐의로 2003년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뒤에도 이는 바뀌지 않았다. 현재 이 의원의 북한관은 어떤 모습일까.
민혁당 사건 당시 1, 2심 판결문에 따르면 이 의원의 청년 시절 북한관은 ‘김일성주의’로 요약된다. 이 의원은 외대 재학 시절 ‘남한 사회는 미 제국주의의 식민지, 북한은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사회’라는 시각을 지녔다. 그 중심에는 당연히 북한 김일성 주석이 있었다. 혁명 과정에서 북한 역할에도 큰 위치를 부여했다.
1989년 민혁당 전신인 ‘반제청년동맹’을 결성할 때는 조직강령을 아예 ‘김일성 장군님의 향도에 따라 나아가는 김일성주의 청년 혁명조직’으로 못박았다. 이 의원은 1992년 민혁당 창당식에서도 어김없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노동자·농민·인텔리·학생·도시 소시민·소자본가들을 동력으로 하여 반미 자주화와 반파쇼 민주화를 투쟁노선으로 채택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국회의원으로 신분이 바뀐 후 이 의원이 북한관을 공개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 그러나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 등 몇몇 발언이 논란을 일으켰다. 또 올해 5월 지하조직 ‘RO’ 모임 녹취록이 공개되자 이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이 의원은 북한의 공식 주장과 비슷한 어구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는 “이승만 정권의 보도연맹 사건을 봐라. 무려 20만명의 무고한 사람이 학살당하지 않았나”고 반문했는데, 지난 6월 북한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조선전쟁 때 처형된 보도련맹 성원 수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알 길은 없지만 최소 20만명이 처형되었으리라는 추산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가정보원 관계자는 1일 “이 의원의 북한관은 달라진 게 없다”고 단언했다.
박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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