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섭 지음/아이필드/1만8000원 |
‘국정원 개혁’, ‘검찰 개혁’, ‘재벌 개혁’ 등 온갖 ‘개혁’이 뉴스에 오르내린다. 그러나 개혁이 성공했다는 낭보는 들리지 않는다.
책 ‘정도전의 선택’은 개혁이 단순한 구호나 포퓰리즘을 넘어서기 위해 역사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며, 위기이자 기회의 시기였던 여말선초 때의 정도전의 삶에 주목한다.
정도전은 급진적인 개혁가였다. 자신의 생각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고 현실 정치에 구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대안을 내놓았다. 그 결과물이 바로 조선왕조 500년을 주도한 사대부(士大夫)였다. 사대부는 유교적 덕목을 체득해 정치에 직접 관여하는 지식인층을 이르는 말이다.
정도전은 경륜을 갖춘 사대부가 임금과 함께 정치를 펼치는 군신공치(君臣共治)를 구상했다. ‘군주의 자질은 한결같지 않다. 그래서 재상은 아래로는 백관을 통솔하고 만민을 다스리며 위로는 군주와 정책을 논의하고 결정해야 한다. 또 군주의 잘못을 시정하는 역할을 게을리해서도 안 된다.’ 군신공치는 단지 겉으로 보이는 체제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재상이 선 채로 소매 속에 넣어 온 문자 몇 줄 읽고 훌쩍 나가 버리는 형식주의가 아니라 왕과 재상이 상호 존중하는 자세로 대화해 진지하게 협의해야 한다.’
개혁가 정도전의 정치사상을 관통한 핵심은 결국 민본주의(民本主義)였다. ‘민(民)은 지극히 약한 존재지만 폭력으로 협박해선 안 된다. 민은 어리석은 사람들이지만 꾀로 속여선 안 된다. 민심을 얻으면 민은 군주에게 복종하지만 얻지 못하면 군주를 버린다. 민이 군주에게 복종하고 버리는 데에는 털끝만큼의 차이밖에 없다.’ 이 생각이 정도전의 개혁을 구호가 아닌 현실적 대안으로 성숙하게 하는 바탕이었다.
‘털끝만큼의 차이’를 오가는 것은 오늘날 정치인의 생명 또한 마찬가지다. ‘개혁’이라는 단어를 쉽게 내뱉는 정치인들이 한 번쯤 개혁가 정도전을 떠올려야 하는 이유다.
김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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