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작 중 걸작’ 금동미륵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을 두고 올해 큰 논란이 빚어졌다. 지난달 29일부터 시작된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의 ‘황금의 나라, 신라’ 특별전에 반가사유상을 보낼 것인지를 놓고 관련 기관들이 옥신각신했던 것. 보존 문제를 염려한 문화재청과 활용에 무게를 둔 국립중앙박물관이 신경전을 벌였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중재에 나선 뒤에야 미국행이 결정됐다. 논란은 국정감사로 이어졌다. 반가사유상을 포함한 일부 국가 지정 유물이 해외전시에 자주, 오래 ‘차출돼’ 혹사를 당하고 있다는 문제 제기였다. 혹사당한다는 유물은 거꾸로 말해 외국인들이 한국의 전통문화와 역사를 접하는 매개가 되는 ‘대표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유물 중에 몇몇 유물이 이런 영광을 누리게 된, 혹은 짐을 지게 된 이유는 뭘까. 한국 대표 유물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 어떤 유물이 많이 나갔나
민주당 도종환 의원이 국립중앙박물관 자료를 종합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1960년 이후 54년 동안 11개국에서 50회의 해외전시가 있었다. 1000일 이상 반출된 유물은 모두 31점. 부여 외리 문양전(보물 343호) 중 ‘귀형문전’이 2738일로 반출기간이 가장 길었다. ‘이광사초상’(〃 1486호)이 2540일로 두 번째, 경주 노서동 ‘금목걸이’(〃 456호)가 2512일로 세 번째였다. 논란의 중심에 섰던 반가사유상은 2057일. 7번째로 긴 기간이다. 재질별로는 돌 혹은 흙으로 만든 유물이 15점, 금속이 12점, 종이가 4점이다. 시대별로는 선사 유물 1점, 고대 유물 17점, 고려 유물 8점, 조선 유물 5점이다.
미국 메트폴리탄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황금의 나라, 신라’ 특별전에서 한 관람객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감상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
반출기간이 1000일 이상된 31점 중 27점이 돌이나 흙, 금속 재질의 유물인 것은 ‘안전성’과 관련이 깊다. 해외전시는 장거리 이송이 필수다. 이 때문에 외부 공기, 진동 등의 위험요소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전시환경 역시 크게 바뀐다. 환경 변화에 약한 유물을 해외에 내보내기 힘든 이유다.
제일 안전한 것은 도자기다. 어떤 전시환경이라고 해도 손상이 거의 없다. 금속공예품 역시 습도에만 신경을 쓰면 큰 문제가 없다. 발굴 전 길게는 1000년 넘게 땅속에 파묻혀 있었으면서 원형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특징이다. 반면 종이로 된 회화 등의 유물은 특히 빛에 약하다. 얇게 잘라낸 소뿔을 사용하는 화각공예품은 환경 변화에 가장 취약한 유물로 꼽힌다. 조그만 틈만 생기면 훼손되는 것이 하루 이틀 사이에도 육안으로 관찰될 정도다. 국립중앙박물관 한수 학예연구관은 “해외전시 유물을 정할 때 첫째 원칙이 안전성”이라며 “전시 후에는 전시기간 대비 4배 정도의 휴식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신라 금관. |
해외전시가 시작된 1950년대만 해도 해외에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 ‘6·25의 나라’에 불과했다. 5000년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그리스, 로마 못지않은 빛나는 문화를 창조한 민족임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 해외전시의 시작이 된 것이 1957년 ‘한국고대문화전’이다. 1970년대에는 ‘한국미술 5000년전’이 주요 국가를 돌며 개최됐다. 두 전시는 세계에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결정적 계기로 꼽힌다. 반출 1000일 이상된 유물 중 시대가 가장 이른 것은 청동기시대의 ‘청동팔령구’(국보 143호)다. 가장 오래 반출된 귀형문전은 백제의 것이다. 삼국시대의 것은 불상, 사리장엄구 등 불교 관련 유물이 대부분이다.
고려청자. |
해외전시는 한국 문화재에 대한 심미안이 부족한 외국 관람객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시각적인 임팩트가 강하고 공감을 쉽게 이끌어 낼 수 있는 유물이 중심이 된다. 반가사유상은 문화권, 시대에 관계없이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해외전시의 또 다른 단골인 ‘신라 금관’(〃 제87호)에 대해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에서 큐레이터를 지낸 서울시립미술관의 선승혜 학예연구부장은 “왕관이 없는 나라가 없지만 ‘출(出)’자형 장식, 옥의 사용 등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유물”이라고 평가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초대 관장을 지낸 김재원 박사도 회고록에서 “(1957년 미국 전시에서) 제일 흥미를 끈 것은 금관이었다.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일품이었다”고 전했다.
고려청자가 많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고려청자는 당대에도 세계적인 명품으로 꼽혔다. 도자기에서 표현하기 힘든 회화성, 흉내를 낼 수 없는 독특한 색깔 등으로 동서고금이 인정하는 명품이다. 불상도 마찬가지다. 기독교의 영향이 강한 서양이라 불상에 대해 생소할 수도 있으나 ‘신상(神像)’이란 면에서 외국 관람객의 공감을 쉽게 이끌어 낸다고 한다.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최근 몇년 사이 조선시대의 회화, 도자기 등에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