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당국이 파악한 ‘북한 인사 70여명 탈북’ 동향은 북한 장성택 전 국방위 부위원장 숙청 사태의 충격파를 반영한 것이다.
외견상 공고해진 듯 보이는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 체제가 내부에서는 불안정성이 더 커졌다는 점을 반영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정보당국은 장성택 숙청을 전후로 이뤄진 탈북 대열에 북한 체제의 근간인 노동당과 군 인사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황장엽 노동당 비서 등과 같은 거물급 인사를 제외하면 탈북 인사 대부분은 외부 세계에 눈뜬 외교관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북한 내부의 엘리트들까지 탈북 대열에 동참했다는 점에서 향후 남북관계와 동북아 안보정세에 파장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이례적인 탈북 러시는 40여년간 북한 내에서 실력자로 행세한 장성택 전 부위원장의 위상을 고려하면 장성택 사태 초기부터 예견됐던 일이었다. 장성택과 친분을 쌓은 장성택 라인 인사들의 규모는 북한 권부를 포함해 수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2주기 추모대회를 통해 북한 권력 핵심의 장성택 측근 인사들을 상당수 존치시킨 것도 장성택 숙청을 전후로 이뤄진 탈북 사태를 염두에 둔 결정이었을 수 있다. 숙청 대상 확대가 야기할 ‘탈북 도미노’ 사태는 김정은 체제의 기반을 근저에서부터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탈북 인사들의 신원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현재 정부는 중국 현지에서 망명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 장성택 측근들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기존 망명사건에서도 정부는 중국 등 관련국과의 외교관계 등을 고려해 실제 망명이 실현되기 전까지는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일부 탈북 인사는 우리 정보당국이 보호하고 있으며 그들로부터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 남한 내 간첩명단 등 핵심 정보가 담긴 문건을 건네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망명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중국 측과의 마찰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일반 탈북자들의 한국 망명도 신중하게 접근한 중국이 북·중 관계와 탈북 인사가 보유한 정보 등을 고려, 이들의 한국행에 제동을 걸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보당국이 장성택 숙청을 전후로 이뤄진 잇따른 탈북·망명 신청 건에 대해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정은체제는 내년부터 후속 숙청작업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전문가들은 내년 4월에 열리는 최고인민회의를 계기로 국방위원회와 내각 부문에서 대대적인 쇄신 및 숙청 작업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북한 엘리트의 집단 탈북 동향은 김정은 체제의 공포정치가 시작된 2012년 말이 탈북 러시의 출발점, 북한 붕괴의 서막이 될 수 있다는 일각의 분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worldp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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