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동북아 3龍’으로 불리는 이들 국가 사이에는 항상 미묘하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이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과거사의 원죄인 일본이 최근 우경화정책으로 급선회하면서 갈등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보면 상호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것이 어찌 보면 아이러니다. 오히려 과거사 부정에서 출발한 일본의 도발로 3국 간에 감정의 골이 그 어느 때보다 깊어지고 있지만 시장의 응집력은 갈수록 끈끈해지고 있다. 해마다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한·중·일 소비 시장의 흐름과 한국 기업들의 활약상을 살펴봤다.
지난 15일 중국 베이징 공항에서 자동차로 30여분 거리에 위치한 중국 롯데마트 주선교점. 주말을 맞아 쇼핑객들이 대거 몰리면서 매장 입구부터 북새통을 이뤘다. 2층 식품관에 들어서자 낯익은 브랜드가 한눈에 들어왔다.
어린이 키 높이만큼 수북이 쌓인 초코파이, 고소미 등 한국의 과자들이 고객들의 카트에 가득 담겼다. 초코파이 4상자(1상자 12개)를 구입한 주부 양양(42)씨는 “중학교 두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빵이 (오리온) 초코파이다. 맛도 좋고 가격도 착하다. 무엇보다 오리온 제품은 믿을 수 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롯데마트는 주말을 맞아 초코파이를 비롯한 국내외 인기 제품을 알리기 위해 대대적인 판촉행사를 진행했다.
지난 15일 중국 베이징 롯데마트 주선교점 식품매장에서 현지인들이 한국 제품을 고르고 있다. |
‘한국의 맛’으로 해외 입맛을 사로잡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초코파이와 신라면은 중국에서뿐 아니라 미국, 유럽 등 세계 각국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의 맛이 세계에서 통한다’는 목표아래 제품 개발에 힘을 기울인 결과다.
오리온은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기업의 하나로 꼽힌다. 오리온 중국법인의 매출은 국내 제과 매출을 앞지른 지 오래다. 2007년 1414억원에 불과했던 중국매출은 연 평균 48%씩 성장해 5년 만인 2012년 1조원을 돌파했다.
지금까지 중국 매출 1조원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주요 그룹사만 달성한 것으로, 국내 식품 업계에서는 최초다.
라면 종주국에서 농심의 선전도 눈부시다. 1999년 700만달러로 시작한 농심의 중국사업은 2012년 1억2000만달러 규모로 성장했고, 2013년 10월을 기점으로 누적매출 10억달러를 달성했다.
최근 중국 라면시장 성장률이 1% 미만인 점을 감안하면 농심의 성장세는 매우 이례적이다. 농심은 중국에서 15년간 단 한 번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적이 없을 만큼 지속적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CJ제일제당, 롯데제과, 오뚜기, 샘표, 하이트진로, 맥키스컴퍼니 등 국내 대표 식품·주류 업체들도 중국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 제품들이 중국시장에서 사랑을 받기까지는 롯데마트가 일등공신이다. 현재 중국 전역에서 107개 매장을 운영 중인 롯데마트는 이마트가 사업을 축소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대형마트로서는 ‘나홀로’ 한국 상품의 판매를 돕고 있다. 이학재 중국 화북사업부문장은 “현재 점포별로 300여개의 한국 브랜드를 진열하고 있는데 올해는 두 배가량 늘릴 계획”이라며 “롯데마트 공익서교점의 경우는 국내 중소기업 제품 전용매장인 ‘K-히트 플라자’를 개소하는 등 중소기업들의 해외판로를 지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기업들은 1980년대 중반 중국 개방화 시점에 맞춰 앞다퉈 진출했다. 한국수출입은행 등에 따르면 2013년 3월 말 현재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현지법인)은 누계 2만2257개로 해외진출 기업수의 41.7%에 달한다.
코트라 관계자는 “중국의 근로자 최저 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등 기업환경이 예전만은 못하지만, 여전히 ‘기회의 땅’은 유효하다”며 “거대한 꿈을 꾸고 많은 한국 기업들이 중국으로 몰려 가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글·사진 김기환 유통전문기자 k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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