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지음/창비/1만2000원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유대인들에게 저지른 ‘홀로코스트(대학살)’는 여러 소설과 영화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일제강점기 비극을 다룬 소설·영화가 더 많아져야 해요. 관동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만 해도 다들 너무 모르고 있잖아요.”
아동문학 작가 김소연(42)씨의 눈이 붉게 충혈됐다. 2004년 등단 후 동화를 주로 써 온 그가 처음 펴낸 청소년소설 ‘야만의 거리’는 일제강점기가 무대다. 1910년 경술국치, 1923년 관동대지진, 그리고 독립투사들이 너도 나도 중국으로 떠난 1920년대 말까지 한민족 수난사를 사실적으로 그렸다. 서울 경희궁길 한 카페에서 만난 김씨한테 대뜸 일제강점기를 택한 이유부터 물었다.
“재기발랄하고 톡톡 튀는 작품도 좋겠지만, 그보다 무게감 있고 아이들에게 뭔가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는 작품을 하나쯤 써도 되지 않을까 했어요. 원래 일제강점기 역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학교에서 그 시대를 배울 때마다 망친 시험지를 구겨 서랍 안에 처박아 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굴욕감, 열패감, 울분, 치욕…. 조금은 평범한 사람, 숨은 영웅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일제강점기 역사를 보여주고 싶었죠.”
소설 주인공은 양반 가문의 서얼인 ‘동천’이다. 핏줄로 사람을 차별하는 악습이 싫었던 동천은 일제가 세운 소학교를 다니며 새로운 학문에 눈을 뜬다. 비좁은 시골에서 평생 ‘천한 놈’이란 욕이나 들으며 사느니 일본으로 유학해 견문을 넓히기로 작정한다. 다행히 마음 착한 일본인의 도움으로 낮엔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고학생이 된다. 그런데, 동천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사건이 벌어진다.
작가 김소연씨는 “‘승냥이’만 마무리하면 판타지 소설을 써볼 생각”이라며 “워낙 사는 게 각박한 요즘 아이들이 책 속에서나마 탈출구를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허정호 기자 |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동천은 항일독립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그를 연모하는 일본인 여대생의 구애도 과감히 뿌리친다. 일제의 탄압이 갈수록 심해지자 동천은 마침내 만주로 떠날 결심을 한다. ‘동물원에 갇힌 승냥이 같은 신세는 되지 않으리라’고 다짐한 동천이 주먹을 불끈 쥐는 대목에서 소설은 끝이 난다.
“요즘 ‘야만의 거리’ 후편에 해당하는 연작소설 ‘승냥이’를 구상하고 있어요. 이르면 2015년쯤 세상에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승냥이처럼 만주 벌판을 헤매며 일제와 싸우는 동천의 활약상이 벌써 기대된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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