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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자 도정일, 부끄럽다며 물었다…

입력 : 2014-03-06 22:23:15 수정 : 2014-03-06 22: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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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산문집 2권 동시 출간
“돈 안된다고 버려진 쓰잘데없는 것들이
돈으로 살 수 없는 고귀한 것들이 아닐까”
도정일(73)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학장이 칼럼을 쓰기 시작한 지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산문집을 묶어냈다. 그것도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 등 두 권을 ‘문학동네’에서 한꺼번에 냈다. 5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자택 인근 커피숍에서 만난 그에게 왜 이리 늦게 냈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은 “부끄러워서”였다. 이 시대의 존경받는 실천적 인문학자가 자신의 글이 부끄러웠다니 말문이 막힌다. 그는 ‘책읽는사회국민운동’(책사회)을 만들어 전국 각지에 ‘기적의 도서관’을 세우고 ‘생각하는 사회’ 조성에 매진해왔다. 경희대에서는 후마니타스칼리지를 이끌며 대학 교양교육의 혁신을 꾀한 인물이다. 틈 날 때마다 각종 매체에 한국사회의 교양과 건강을 위해 감칠맛 나는 칼럼을 써왔다.

“그동안 출판하자는 제안이 많았는데 한 번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책 같은 거 안 내면 안 내는 거지 뭐, 라는 것이 평소 지론인데 지난해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서 생각이 좀 달라졌습니다. 내가 200년 살 것도 아닌데 책도 낼 수 있을 때 내는 것이 좋겠구나 싶더군요. 어차피 써놓은 거 정리하고 책임지는 게 독자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구요. 편집자가 사방에 흩어져 있던 칼럼들을 모아놓은 분량에서 절반도 싣지 못했습니다.”

도정일 문학선 1권으로 출간된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은 말 그대로 돈이 안 되는 쓰잘데없는 것들이지만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고귀한 것들의 세목이 녹아든 칼럼들을 모았다. 그는 “지금쯤 우리는 쓰잘데없어 보이는 것들, 시장에 내놔봐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들, 돈 안 되고 번쩍거리지 않고 무용하다는 이유로 시궁창에 버려진 것들의 목록을 만들고 기억해야 할 시간이 아닌가”라고 묻는다. 

20여년 만에 첫 산문집을 펴낸 문학평론가 도정일. 그는 “의미, 희망, 정의는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세 개의 지주와 같다”면서 “희망이 없다는 것은 지옥의 조건이요 정의 없음은 야만의 조건이며 정의의 부재는 삶의 기쁨과 영광을 박탈하는 형벌과 같다”고 역설했다.
“20년 동안 써온 칼럼들을 돌아보면서 우리 사회가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행복 이데올로기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우리 사회는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는데 문제는 그 행복이라는 게 돈만 있으면 찾아오는 걸로 인식돼 있다는 사실이죠. 인문학의 세 가지 큰 관점, 우리 삶의 의미와 가치와 목적을 찾는 일이 선행되지 않은 채 행복이라는 파랑새만 맹목적으로 추구하다 보면 오히려 좌절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산문집 2권 제목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는 괴테 어머니의 도움을 받았다. 괴테의 어머니는 밤마다 일곱 살짜리 아들과 함께 하늘의 별들 사이에 이야기의 길을 만들고 이야기로 아들을 키웠다고 한다. 도 교수는 “생각해보니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람과 천지 만물 사이에 이야기의 길을 열고 있는 사람들은 이 땅에 너무 많다”면서 “이 산문집은 그분들에게 보내는 내 마음의 인사”라고 했다. 이 산문집에는 ‘책사회’를 이끌면서 이와 관련된 칼럼을 써온 내용들을 집중적으로 담았다. ‘책사회’는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 ‘느낌표’와 결합해 전국에 ‘기적의 도서관’ 11개를 세우는 기적을 연출했다. 단순히 시민 모금만으로 진행했으면 도서관 1개당 20억원 넘게 드는 건축비용을 감안할 때 180년 이상 걸릴 수밖에 없는 사업이었다니 가위 기적이라 할 만하다.

나라에서 훈장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느냐고 묻자 도 교수는 “‘책사회’는 훈장을 추구하지도 않지만 준다 해도 건방지지만 사양할 것”이라면서 “인문학 위기론이 강하게 거론될 때 단지 대학사회의 밥그릇 위기가 아니라 사회가 인문적 가치를 상실하는 것이야말로 큰 위기라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인문학 교수들이 도서관을 짓자고 나서게 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당시만 해도 도서관은 사회적 화두가 아니었는데 ‘책사회’가 불을 지핀 셈이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조용히 실천적인 인문학자의 길을 걸어온 도 교수는 문학평론가로도 이름이 높다. 현장비평을 담은 첫 평론집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는 전문가들끼리의 암호 같은 평문에서 벗어나 독자와 따뜻하게 소통하는 평문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는 한국문학의 위기론에 대해서도 “창작을 하는 젊은 세대가 표피적이고 인기나 오락에 경도되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평론가들은 문학의 죽음을 운위해서는 아니 되고 언제든지 걸출한 작가와 작품이 나올 가능성은 충분하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이끌어내는 데 진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가져올 때 제우스 궁에서 미처 훔쳐오지 못한 절반의 선물, “시민의 덕목”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100년은 더 살아야 할 것 같다고 ‘지팡이를 짚고’ 웃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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