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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비평 문화 조성에 밑거름 됐으면…”

입력 : 2014-04-29 21:05:39 수정 : 2014-04-29 21:5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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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사람] 박세현 만화문화硏 ‘엇지’ 소장 ‘만화비평 문화에 밑거름이 되고자 한다.’

최근 창간한 만화비평지 ‘엇지’의 창간사 중 일부다. 오늘날 만화비평은 말 그대로 ‘밑거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불모지다. ‘웹툰’(webtoon·인터넷으로 배포하는 만화)이 인기를 끌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상업적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는 있지만, 만화를 ‘문화’로서 진지하게 평가하려는 시도는 부족했다.

박세현(45) 만화문화연구소 ‘엇지’ 소장이 ‘코코리뷰’ 폐간 이후 12년 만에 새로운 만화비평지 창간에 나선 것도 이런 문제의식에서다.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의 ‘엇지’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갈증’이라는 단어를 수차례 강조했다.

“웹툰이 활성화되면서 만화가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에 대한 비평은 쉽게 찾아볼 수 없어요. 그러니 자연스레 만화비평에 대한 갈증이 생길 수밖에요. 그 갈증을 충족시키는 첫걸음이, 비평을 제대로 담아줄 ‘공론장’을 만드는 거였죠. 연구자나 비평가들은 커지는 만화 문화를 보면서 하고 싶은 말이 점점 많아지고 있거든요.”

1990년대 중후반에는 만화에 대해 서슴없이 논했던 비평문화가 갖춰져 있었다. 한 스포츠신문은 만화평론상을 만들어 만화평론가의 공식 등단 창구를 마련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만화비평은 그 기반을 잃었다. 출판만화의 몰락도 비평의 쇠퇴를 거들었다. 그러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웹툰의 인기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자연스레 작품을 진지하게 평가하려는 목소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블로그나 일부 매체에 게재된 산발적인 비평들이 그 증거였다.

이 목소리를 한데 모으기 위해 만들어진 만화비평지 ‘엇지’의 이름은 1913년 최남선이 창간한 어린이 잡지 ‘붉은 저고리’에 게재된 최초의 연재만화 ‘다음엇지’에서 가져왔다. 만화를 순우리말로 표현한 ‘다음엇지’는 다음 칸을 보지 않고서는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의 사무실에서 ‘엇지’ 창간호를 양손에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박세현 소장. 그는 좋아하는 만화를 묻는 질문에 “한 작품을 여러 번 반복해서 보는 걸 좋아한다”며 “웹툰 중에선 ‘삼봉이발소’ ‘3단합체 김창남’ 등을 그린 하일권 작가의 작품을 특히 즐겨 본다”고 답했다.
허정호 기자
박 소장은 ‘엇지’가 “만화문화를 보는 시각을 갖출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했다. 만화는 사실 다른 대중문화인 드라마나 영화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수가 많다. 가장 많은 수의 웹툰을 보유하고 있는 포털사이트 네이버만 해도 100편을 훌쩍 넘는 작품들을 연재하고 있다. 그러니 좋은 만화를 골라서 보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단순히 개별 만화를 보게끔 유도하는 ‘리뷰’만을 싣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 전체를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는 원론적이고 이론적인 면을 적극적으로 다룰 거에요. 그렇다고 학술지처럼 딱딱한 내용만 담기는 건 아니에요. 당대 이슈와 적극적으로 호흡하려 노력해야죠.”

온라인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시사만화 ‘장도리’의 박순찬 작가나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한 웹툰 ‘닥터 프로스트’의 이종범 작가의 인터뷰를 창간호에 실은 건, 바로 이런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중에서도 박 소장이 가장 애착을 보인 건 바로 ‘궁’ ‘열혈강호’ ‘리니지’ ‘위대한 개츠비’ 등 한국만화 수십편을 프랑스에 소개한 만화번역가 강미란씨의 인터뷰였다.

“기존 만화계에서 주목한 적이 없던 분이에요. 사실 한국만화가 유럽에서 주목받을 수 있었던 건 이런 번역가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에요. 단적으로 프랑스에선 ‘이지메’라는 단어는 익숙한데 ‘왕따’는 잘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일본 ‘망가’가 이미 프랑스 사람들에게 대중적으로 읽히기 있기 때문이죠. 강미란씨는 왕따를 번역하면서, 그 말에 각주를 달고 이지메와 비교 설명하면서 한국문화를 제대로 알리는 노력을 하신 분이죠.”

이런 새로운 내용을 담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 ‘엇지’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박 소장도 확신하지 못했다. 그는 “‘출판문화의 몰락’에서 보듯 긴 호흡을 갖고 활자를 보는 독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엇지’를 창간한 건 이 추세를 거스르는 작업인지도 모르겠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가 대학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직접 만화비평을 쓰게 하고 그 결과물을 전자책으로 출판했던 건, 바로 이런 열악한 환경 전반을 개선해보려는 노력의 일부였다.

“다들 알아요. 그런 어려운 조건을 몰라서 창간 작업에 참여한 건 아니에요.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해야 할 때라는 공감대가 생긴 거죠. 거창하게 얘기하면 사명감이기도 하고…. 큰 바람 없어요. 딱 말 그대로 ‘밑거름’만 될 수 있다면 바랄 게 없겠네요.”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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