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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정의 공연 돋보기] 다양한 모습 공존하는 무대 ‘사회의 축소판’

입력 : 2014-05-29 22:49:14 수정 : 2014-05-29 22:4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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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양하다. 나는 부지런하기도 하고, 게으름을 피우기도 한다. 나는 합리적이기도 하고, 비합리적이기도 하다. 나는 타협하지 않는, 불편한 사람이기도 하다. 나는 숫기가 없으면서 뻔뻔하기도 하고 악하면서도 선하다. 다양한 모습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그리고 내 안에 모든 것이 뒤섞이기를 바란다!”

얼마 전 의정부음악극축제에서 공연한 러시아의 시극 ‘넷 렛’에서 반복적으로 읊어졌던 옙두셴코의 시구이다. 이 시에서처럼 사람들은 여러 가지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살아간다. 관계에 따라 맥락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모습들이 발휘될 뿐. ‘나’가 이렇게 다양한데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사회는 얼마나 다채로울까.

올해 국제현대무용제 개막작인 ‘하우스’는 억눌려 있던 본능이 깨어나는 모습을 관능적인 동작으로 표현했다.
공연은 많은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이뤄가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그러한 사회의 축소판이다. 하나의 주제를 향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속에 다양한 목소리들을 담고 있다. 점묘법 화가 조르주 쇠라의 그림에서 보라색으로 보이는 여인의 드레스가 실은 빨간색과 파란색의 점들로 이루어진 것이듯. 뮤지컬 ‘조지와 함께 한 공원에서의 일요일’에서는 쇠라가 그렇게 점을 하나하나 찍으며 무대만 한 그림을 완성해가는 과정이 적잖은 감동을 준다.

특히 현대의 실험적인 퍼포먼스들은 관객에게 주제를 강요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즉 관객이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이 정답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창작자나 배우뿐 아니라 관객 역시 작품의 의미생산자가 된다. 올해 국제현대무용축제(모다페)의 개막작인 ‘하우스’는 관객에 따라 내용을 해석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작품이다. 이스라엘 무용단 L-E-V는 아예 관객이 자유롭게 해석하기를 독려하는 의도로 프로그램에 작품의 주제나 의도에 대한 해설을 담지 않았다. 주입식 교육에 익숙하면 당황할 수도 있겠지만, 오롯이 스스로의 느낌과 생각을 따라가는 관극의 재미도 상당히 쏠쏠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공연에서 집단 속의 다양성에 흥미를 느꼈다. 언뜻 무용수들이 비슷한 동작을 공유하고 반복하는 것 같지만, 보면 볼수록 놀랍도록 잘 훈련된 몸에서 나오는 춤의 질감이 각기 다르다. 또한 뮤지컬 안무가 밥 파시를 떠올리게도 하는 다소 기괴하면서도 관능적이고 경쾌한 동작들이 억눌린 내면을 들여다보게 했다.

앞서 소개한 ‘넷 렛’의 시구는 “당신은 내게 질문할 것이다. 대체 어느 것이 진실이냐고”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해 꼭 하나만이 진실이어야 하느냐고 반문해 본다. 포스트구조주의 철학가인 리오타르가 이야기했듯, 하나로 통합한다는 것은 ‘나’의 입장에서 정당성을 가지고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이 때문에 내가 만든 생각의 틀은 다른 이들에게, 특히 소외된 타자에게 폭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오히려 지속적으로 다양성을 발견하고 인정하려는 노력이 낙관적인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만들지 않을까. 대중이 아닌 ‘다중’의 개념으로 공동체와 개인을 모두 품어 안을 때인 것 같다.

현수정 공연평론가·중앙대 연극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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