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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 아동에 책 읽어주는 형·누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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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8-22 21:08:06 수정 : 2014-08-22 22:4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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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9월 자선 북콘서트 여는 청년단체 ‘책누나’
“봉사한다곤 하지만 배우는 게 더 많아요”
흔히 시각 장애인 하면 점자를 떠올린다. 그런데 태어날 때부터 시각 장애가 있었다면 모를까, 어느 날 갑자기 질병이나 사고로 시력을 잃은 경우 점자를 익혀 능숙하게 쓰기란 쉽지가 않다. 그래서 많은 시각 장애인은 누군가 곁에서 책을 읽어주길 간절히 원한다. 앞을 볼 수 없는 어린이들과 독서의 기쁨을 나누는 ‘책 읽어주는 누나’(이하 ‘책누나’)가 탄생한 이유다.

“시각 장애 어린이 중엔 점자를 모르는 아이도 많아요. 사람 목소리를 녹음한 이른바 ‘오디오북’은 지루해서 어린이들이 집중하지 못하죠. 예를 들어 책에 ‘파란색’이란 낱말이 나왔을 때 그게 무엇인지 오디오북으로는 설명이 힘들어요. 대부분의 책은 시각 장애인이 읽을 것을 전제로 쓴 게 아니거든요. 어린이를 직접 붙들고 책을 읽어주는 게 가장 효과적인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시각 장애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책누나’로 활동 중인 정여진, 전수연, 장수혜, 김태영(왼쪽부터)씨가 9월21일 열기로 한 북콘서트에 관해 이야기하던 도중 밝게 웃고 있다.
‘책누나’는 시각 장애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20대 청년들의 단체다. 모임의 대표인 장수혜(26)씨를 비롯해 정여진(25), 김태영(28), 전수연(27)씨 등 회원 14명 대부분 문화재단에 다니거나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들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도 있다. 초등학교 선후배 등 이런저런 인연으로 평소 알고 지내던 이들이 한데 뭉쳐 책 읽어주는 활동에 나선 것은 꼭 1년 전의 일이다.

“처음부터 시각 장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건 아니고요.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꿈과쉼’이란 어린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어준 게 계기가 됐어요. 어릴 때는 다들 주의가 산만해 책을 오래 붙들고 있지 못하잖아요. 그런데 저희처럼 예쁘고 잘생긴 누나와 형들이 바로 옆에서 1대1로 책을 읽어주니까 너무들 좋아하는 거예요.(웃음)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온 어머님들도 무척 기뻐하시고요.”

우연히 깨달은 책 읽어주는 일의 효용을 시각 장애 아동들한테 확장하기로 마음먹은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강북구 수유동 한빛맹아원을 소개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점자에 익숙치 않고 오디오북에도 흥미를 못 느끼는 아이들을 위해 직접 책을 읽어주는 활동이 꼭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고 의기투합했다. ‘재능 기부’라는 말은 좀 낯간지럽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로 세상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낭독만 하는 건 아니고요. 4, 5명이 책 속의 등장 인물을 각자 하나씩 맡아 동화 구연을 하듯 실감나게 읽어요. 일종의 이야기 극장이라고 할까요. 간단한 연극을 하는 셈이죠. 책 읽어주기를 하기 전에 저희끼리 모여 리허설도 하고 그래요. 사람 음성만으로 부족할 때는 미리 컴퓨터로 작업한 적절한 효과음을 들려주기도 하죠. 저희와 함께하고 싶은데 목소리가 안 좋아서 걱정인 친구들도 있지만 기우입니다. 아이들과 친해지고 소통하는 게 핵심이지 목소리는 전혀 중요치 않아요.”

남자애들한테만 책을 읽어주는 것도 아닌데 ‘누나’란 이름을 붙인 까닭이 궁금했다. 회원 대부분이 여성이고 남동생을 둔 경우가 많아 누나라는 호칭이 편하다고 했다. 아무래도 여자애들보다 책을 덜 읽는 남자애들한테 집중적으로 독서를 시켜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도 작용했다는 설명에 슬며시 웃음이 났다.

“처음에는 모임에 여자들만 있어서 ‘책누나’란 명칭이 적절했어요.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역시 남자가 있어야 하겠더라고요.(웃음) 남자들은 ‘책형’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고 남자애들에게만 책을 읽어주는 건 아니고요. 여자애들도 저희를 ‘책언니’, ‘책오빠’라고 부르며 잘 따라요.”

‘책누나’는 오는 9월21일 오후 3시 종로구 삼청교회에서 시각 장애 어린이를 위한 북콘서트를 연다. 시각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소리’로만 대화해보자는 뜻에서 참석자 모두에게 무선 헤드폰을 빌려준다. 음향감독으로 유명한 피정훈 서울예대 교수가 특별히 참여해 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에게도 소리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수익금은 전액 한빛맹아원에 전달해 점자 책 구입 등에 쓰도록 할 계획이다.

“북콘서트에 필요한 비용 100만원 마련을 위해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예술나무포털’을 통해 크라우드펀딩을 하는 중입니다. 목표액까지 아직 30만원가량 남았는데 저희가 더 열심히 뛰어야죠. 사람들은 저희가 장애 어린이를 위해 ‘봉사’를 한다고 말하지만, 실은 저희가 어린이들한테 배우는 게 훨씬 많습니다.”

글=김태훈 기자, 사진=이제원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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