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 피케티 지음/장경덕 외 옮김/글항아리/3만3000원 |
각기 프랑스와 미국을 대표하는 경제학자의 저서가 국내 출판시장에서 승부를 펼친다. 토마 피케티(43) 파리경제대 교수의 ‘21세기 자본’, 그리고 앵거스 디턴(69) 프린스턴대 교수의 ‘위대한 탈출’이 주인공이다. 호사가들은 벌써부터 전자를 ‘좌파’, 후자를 ‘우파’로 규정하며 마치 좌우의 격돌처럼 흥미진진하게 묘사한다.
‘21세기 자본’은 출간과 동시에 전 세계에서 화제가 됐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경제학 전문서적임에도 정식 출시 전부터 예약 주문만 5000권을 넘어섰다. ‘피케티 열풍’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다.
책은 19세기 마르크스가 펴내 고전으로 자리 잡은 ‘자본론’의 21세기 버전을 자처한다. 한때 지구의 절반을 장악할 만큼 인기를 끈 마르크스 경제학이 현대에도 타당한지 점검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사람들은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붕괴할 것”이란 마르크스의 예측이 틀렸다는 이유로 마르크스 이론을 송두리째 부정하곤 한다. 피케티는 다르다. 그는 프랑스·미국·영국 등 주요 20개 국가의 경제를 약 300년에 걸쳐 분석한 끝에 “자본주의는 자의적이고 견딜 수 없는 불평등을 자동적으로 양산한다”고 결론짓는다.
부자의 자손만 부자가 될 수 있는, 그래서 저소득 계층 자녀는 평생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세습 자본주의’의 도래에 대한 피케티의 경고는 분명히 매력적이다. 그가 제시한 해법도 아주 간단명료하다. 부자들한테 더 많은 세금을 걷어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행여 부유층이 세금을 안 내려고 국적을 바꾸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나라가 공동으로 이른바 ‘글로벌 부유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은 자못 통쾌하다.
2011년 10월 미국 뉴욕에서 시민들이 “월가를 점령하자” 등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든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금융자본의 탐욕이 불평등을 양산하고 있다”며 정부와 대기업에 시정을 촉구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앵거스 디턴 지음/이현정 외 옮김/한국경제신문/1만6000원 |
‘위대한 탈출’은 실은 ‘21세기 자본’보다 먼저 나온 책이다. 그런데 피케티 열풍이 불자 보수적 경제학자들이 뒤늦게 ‘위대한 탈출’을 인용해 ‘21세기 자본’의 오류를 논박하고 나섰다. 그래선지 국내 출판계도 디턴과 피케티 사이에 무슨 ‘세기의 논쟁’이라도 벌어진 양 떠들썩하게 홍보하고 있다.
제목은 인류가 지난 세기 빈곤과 질병으로부터 위대한 탈출을 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정통 주류 경제학자로 통하는 디턴은 책에서 “인류의 부가 늘고 보건 수준이 향상돼 더욱 살기 좋아졌다”고 낙관적 견해를 제시한다. 물론 그도 “세계는 불평등하다”고 인정한다. 그런데 불평등을 척결해야 할 ‘악’으로 여긴 피케티와 달리 디턴은 “불평등이 경제성장을 촉진한다”고 강조한다.
1940년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한국이 지금은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5위의 경제대국이 된 점을 보면 디턴의 이론에 수긍이 간다. 한국은 불과 70년 만에 디턴이 말한 ‘위대한 탈출’에 성공했다. 책은 “한국만이 특별한 예외인 게 결코 아니고, 지금 못 사는 국가들도 언젠가 성장의 결실을 거둘 수 있을 것”이란 긍정적 결론을 내놓는다.
두 책의 출간에 국내 경제학계 거물들도 관여해 눈길을 끈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교수는 ‘21세기 자본’의 해제문을 썼다. 반면 자유경제원 현진권 원장은 ‘위대한 탈출’ 서두에 피케티를 공격하는 장문의 발문을 실었다. 오는 19일 피케티의 내한을 계기로 불평등과 성장을 둘러싼 국내 경제학계 논쟁은 한층 뜨거워질 전망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