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일상의 미학 # 좋은 집, 일상이 만들어내는 감동
건축 강연을 하거나 혹은 건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질문은 “좋은 집은 어떤 집인가요?”가 아니다. 애석하게도 “집을 짓기 위해 돈이 얼마나 드나요?”(사실은 “평당 얼마예요?”)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듣는다.
물론 그 질문이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자본주의가 극단적으로 전개되다 보니 집의 의미가 돈과 결부되는 여러 가지 조건과 환금성, 투자 가치 등으로만 환산되는 것 같아 씁쓸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집이란 그런 의미가 아니고 우리의 삶을 담는 아주 소중한 곳이고…, 하는 이야기로 대답을 끌어내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래서 대체 얼마가 드는데?’ 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참으로 우울해지다가 결국은 슬퍼지는 우리 현실이다. 나는 사람들이 지루해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기회가 되면 늘 이야기한다.
“건축은 산업이기도 하고 공학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문화입니다. 그중에서도 집이란 문화로서의 건축에서도 가장 활짝 피어나는 꽃이며 정화(精華)이기도 하고요.”
문화라는 것, 혹은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인문학이라는 것 또한 알고 보면 그저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서 문화란 편안한 것이고 또 매우 유쾌한 것이다. 어쩌다 간혹 성의 있는 사람이 “어떤 집이 좋은 집인가요?” 하고 물어오면 나는 서슴없이 이야기한다. “좋은 집은 가족의 생활이 담기는 집, 일상복처럼 편안한 집”이라고.
집이란 우리 생활이 담기는 곳이고 그러므로 편안해야 한다. 집은 우리가 앉거나 누워서 쉬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는 곳이다.(실은 대개 텔레비전을 본다.) 그런 공간에서 빳빳하게 다려낸 듯한, 이를테면 유명 디자이너가 패션쇼 무대 위에서 걸을 때 입는 용도로 디자인한 옷을 입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집이란 우리에겐 무릎 나온 트레이닝복처럼 헐렁하고 편안해야 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집이 있다. 역사에 길이길이 남는 집도 있고, 모든 사람이 꿈꾸는 집도 있고, 돈으로 쌓아 놓은 듯한 집도 있다. 20세기 현대 건축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프랑스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지었다는 ‘빌라 사보아’는 현대 건축의 새로운 어휘를 정립한 걸작이다. 지금도 관광객과 건축가들이 끊이지 않고 찾아가는 집이지만, 시공상의 여러 문제로 정작 집 주인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고 한다. 미국의 대표적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낙수장’ 역시 미국의 보물로 여겨지고 많은 사람이 찾아가는 명소다. 새로운 건축의 지평을 열어준 집이지만, 그곳을 의뢰한 건축주인 카우프만이라는 사람은 시끄러운 폭포 소리와 실험적 건축의 대가로 주어진 크고 작은 문제로 골머리를 썩였다고 한다. 역사에 길이 남고 건축의 영원한 고전으로 추앙받는 그 집들은 ‘좋은 집’일까, 아니면 나쁜 집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저 고약하고 못된 집일까. 과연 우리는 어떤 곳에 가치의 기준을 맞추어야 할까.
이런저런 역사적 의미나 건축적 성과를 떠나서 나만의 기준으로 이야기하자면, 나는 길 옆으로 들꽃처럼 피어난 집들을 좋아한다. 말하자면 어느 동네에나 흔히 있는 민가들, 어떤 특정 시대의 양식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동네 사람들이 품앗이하며 동네의 노동력으로 지은 집들이다. 그러나 그 집에는 생활에 대한 애정과 삶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생각이 스며 있다. 그 집들은 거칠고 순박하지만 마음을 흔들어대는 감동을 준다. 나는 그런 건축, 일상이 만들어내는 그런 집들을 위대한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그대로 문화이며 그것이 그대로 인문학이기도 하다.
560년 된 가장 오래된 살림집, 서백당. |
경북 영주 부석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구에 크게 조성된 사하촌에서 차를 내려야 한다. 주차장에서 부석사로 올라가기 위해 큰길로 나서면 건너편 언덕에 지어진 허름한 집 한 채를 볼 수 있다. 세 칸 한옥으로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오른 쪽 한 칸 위에 사방을 유리로 막은 방이 얹혀 있다. 그리고 지붕은 얇은 철로 된 골강판을 얹었고, 벽체의 구성이나 재료도 전통 한옥의 재료가 아니다. 이를테면 한옥도 아니고 일본집도 아니고 그렇다고 서양식도 아닌 그냥 ‘동네 집’일 뿐이다.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것 같았고 그냥 언덕에서 혼자 심심하게 길 건너 번화한 상점들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그 집이 너무 맘에 들어 볼 때마다 넋을 놓고 쳐다보곤 한다. 마음 같아선 경제적으로 허락된다면 그 집을 사서 고치고 다듬어 같이 살고 싶다. 그 집이야말로 어떤 작위나 허세도 없이 오로지 생활과 일상의 힘으로 지어낸 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저작권의 양해도 없이(양해를 구하려고 해도 저작권의 주체를 찾지 못했고) 이런저런 요소를 가져다 내가 설계하는 집에 인용하곤 한다.
서백당 대문을 들어서면 마주보이는 사랑채 누마루와 담장 스케치. |
우리의 생활이 담기는 일상의 집과는 조금 다른 집이 있다. 종갓집, 그 집은 일상과 상징이 동시에 담긴다. 상징이란 다름 아닌 집안의 정신이며 집안의 이야기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종갓집은 시간의 거센 파도에도 단단한 껍질을 두르고 버티고 있으며, 타임캡슐처럼 몇 백 년 동안 전해지는 집안의 정신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조상에게 올리는 제사를 위해 존재하는 집이면서도 일상이 공존하는 곳, 지금은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희미하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나는 그중 가장 오래된 곳을 하나 알고 있다. 경주 양동마을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서백당’이라는 집인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집이기도 하다. 서백당은 양동마을에 있는 월성 손씨 집안의 종택이다. 입향조인 손소가 세조 때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을 세우고 청송 본가에서 처가가 있는 양좌동으로 들어오면서 지은 집이라고 한다. 손소가 세조 때 사람이니 이 집은 우리가 아는 살림집 중 충남 아산에 있는 ‘맹씨행단’ 다음으로 오래된 집이다. 전해지는 말로는 성종 15년에 지어졌으니 서기로 환산하면 1454년, 지금으로부터 560년 전에 지은 집이다. 사실 맹씨행단은 지금 살림집으로 쓰이지 않고 있고 더군다나 집의 일부만 전해지므로, 서백당이 가장 오래된 살림집이라고 주장해도 무리가 없다.
집의 구성은 한국의 살림집에 흔한 ‘ㅁ’ 자 형식의 평이한 집이다. 그런데 그런 평이함은 종가집에 써먹기에는 그리 쉽지 않은 방법이다. 듣자 하니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진 집 중 남은 집이 손가락으로 세면 몇 개가 남는다고 하니 참 귀한 집이다. 더군다나 사람들이 아직도 남아서 마당 쓸고 마루 닦고, 사랑 마루 난간에 기대 앉아 손님을 맞이하는 집이니 더욱 귀한 집이다. 집의 이름도 ‘참을 인 자를 백번 써라’ 하는 뜻을 지닌, 단순하고도 명쾌하지만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느껴지는 집이다.
‘일상의 건축’을 보여주는 영주 부석사 사하촌 입구의 2층 한옥. |
답사를 다니다 보면 때로는 집의 구성이나 역사 그런 것들보다 그 집 주인이 친절하거나 불친절하거나 하는 아주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감정이 개입될 때도 많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서백당에 대해서는 받은 것도 없이 호감이 가고 심지어는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기도 한다.
서백당은 가장 훌륭한 구성을 가진 옛집임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비중의 집들과는 다르게 국보라든가 보물이라든가 하는, 나라에서 “이 집은 꼭 지킵시다” 하는 딱지를 붙이지 않은 집이다. “까짓 보물이라든가 하는 딱지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내가 보기에는 그런 대접은 꼭 받아야 하는 집인데 왜일까 하는 궁금증이 갈 때마다 드는 것은 사실이다.
서백당은 문턱을 넘어설 때 만만하면서도 다채로운 축대가 보이고, 그 옆으로 가다가 끊긴 담이 하나 있어 눈이 그리로 쏠릴 즈음 흔쾌히 사당이 나타난다. 혹은 담담하고 대범한 난간 뒤로 꺾이는 공간으로 각도를 틀 때, 안채로 향하는 좁지만 위태롭지 않은 길이 보이고 바로 안채로 흘러 들어가는 중문채가 보인다. 견고한 네모로 만들어진 안채는 입체의 귀퉁이를 쭉 잡아 빼놓은 사랑채로 공간에 숨을 불어넣고, 그 사랑채는 모서리로 집을 마주하고 있다. 집에 들어설 때 마치 입체의 정수리를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난간에 서백당의 종손이 걸터앉아 우리를 내려다보며 “어디서 오셨는데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몇 년 전 여름 한참 더운 날의 일이었다. 서백당을 찾아갔더니 마침 집안의 어떤 젊은이가 결혼을 했는지 한복 입고 색시 데리고 와서는 마루에 그간의 사정을 풀어놓고 인사 드리느라 집안이 시끌시끌했다. 마당을 건너다 보니 집안에 사람들이 모여서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불쑥 찾아든 것이 미안했지만 되도록 거치적거리지 않을 정도로 살살 집의 외곽을 돌아다녔다.
그날 우리는 사당으로 가는 마당에 있는 향나무 언저리에서 언뜻 언뜻 들리는 다정한 소리들을 다 들으며, 담담하고 평온한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지를 지긋이 감상하고 있었다. 마침 한 무리의 남자들이 행사를 마쳤는지 사랑채로 나오고 있었다. 그중 그 집 종손으로 보이는 분이 집의 꼭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사랑채 모서리에 앉아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가 바로 우리가 ‘손동만 가옥’으로 알고 있는 서백당의 전 주인 ‘손자 동자 만자’ 어른의 장손이며, 지금의 월성 손씨 종손이라고 했다. 우리는 목이 아프지 않은 정도의 각도로 올려다보이는 위치에서 그분과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책으로 본 내용들을 들었다.
그 사랑채의 위치와 각도, 그리고 팔을 기대고 내려다보는 종손을 보며 마치 마지막으로 붓을 들어 눈을 그려 완성을 보았다는 어떤 그림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최고의 집 서백당, 그 집은 일반적인 종가가 가지고 있는 높이와 넓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람을 주눅 들게 하지 않는다. 엄숙과 평온함이 공존하는 집. 그러나 만만하지 않은 집. 서백당은 평이함 속에 고귀함을 담고 있으나 절대 남에게 그 고귀함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집으로 들어가면 세상의 모든 번잡함이 수구로 빨려드는 물처럼 빠르게 잦아든다. 그것이 일상과 정신의 힘이고 그 힘이 들어있는 집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집이라고 생각한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공동대표·‘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주다’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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