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2년간 생물다양성협약(CBD) 의장을 맡게 되는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 생물유전자원의 중요성과 국제협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환경부 제공 |
나고야의정서는 생물유전자원을 이용할 국가에 대해 그 자원을 보유한 국가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하고 그 이용으로 발생한 이익을 상호 합의한 계약조건에 따라 나누도록 했다. 현재 53개국이 비준했다.
최 원장은 “다양한 생물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의 상당수가 후진국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 선진국이 이런 나라에 가서 생물유전자원을 착취하고 환경을 황폐화시키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를 방치하면 전 지구적으로 생물다양성이 고갈되는 결과가 되는데 이걸 막자는 게 나고야의정서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진짜 매력은 유전자원에서 나오는 경제이득을 자원을 보유한 후진국과 나눠 갖는다는 점입니다. 선진국도 자기들의 행동에 책임을 진다는 의미죠.”
문제는 우리나라처럼 최고의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물다양성을 많이 보유하지도 않은 경우다. 우리나라는 CBD 당사국총회를 평창에 유치해 놓고도 나고야의정서에 대해 국회비준이 이뤄지지 않아 다음주부터 평창에서 열리는 나고야의정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다.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리나라는 나고야의정서가 발효되는 12일부터는 이를 준수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국가들이 비준했기 때문이다.
최 원장은 “이런 규칙이 없을 때는 몰래 빼오는 일이 가능했는데 이제 정당한 값을 치르라고 하니 갑자기 부담이 되는 것”이라며 “일본 역시 나고야의정서를 자기들이 발의해 놓고 아직 비준도 안 한 모순된 행동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세금 많이 낼 거 두려워 차라리 돈 안 번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다”며 “개인적으로는 이런 바보 같은 일을 할 사람이 없는데도 국가 차원에서는 이런 이상한 논리가 나온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최 원장은 “우린 생물자원이 많지 않아 손해 쪽에 있는 나라 같지만 단순히 숫자로 표현할 일은 아니다”면서 “우리나라는 온대 몬순기후라 사계절이 뚜렷하고 반도라 대륙성 종과 해양성 종을 다 가진 뜻밖의 흥미로운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지고 나간 미스킴라일락이나 구상나무 같은 것들이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선진국들은 막대한 돈을 투자해서 생물유전자원을 찾아 열대를 이 잡듯 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거의 투자를 못했습니다. 계속 거부하고 도망 다닐 게 아니라 나고야의정서가 발효되면 적극적으로 덤벼들어야 합니다.”
이번 CBD 당사국총회에서는 비무장지대(DMZ) 생태보전에 대한 논의도 심도있게 이뤄지고 있다. 그는 “문명이 자리 잡은 온대지방에 DMZ처럼 60년 동안 인간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생태계가 남아 있는 곳이 없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최 원장은 이어 “그런데 우리 정부는 DMZ가 생태계의 보고라고 립서비스만 했을 뿐 보전에 대한 특별한 기획이 없었다”며 “준비 안 된 상태로 어느 날 통일이 됐을 때 DMZ 생태계의 미래는 알 수 없다”고 우려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유엔총회에서 DMZ에 ‘세계생태평화공원’을 건설하겠다고 밝혔을 때 최 원장이 ‘생태’라는 단어가 추가되도록 물밑 작업을 했다. 그는 “이제 생태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상 모든 논의에 DMZ의 생물다양성이 중요한 의제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면서 “통일이나 평화를 내세우고 밀어붙이는 것보다 생태를 앞에 걸고 남북이 어떻게 보전할지 이마를 맞대다 보면 자연스럽게 통일로 이어지지 않겠느냐”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앞으로 2년간 CBD 의장을 수행해야 하는 그의 어깨는 무겁다. 그동안 정치인들이 주로 하던 의장을 생물다양성을 연구하는 학자가 맡게 되자 주변의 기대가 크다.
“유엔이 2010년을 생물다양성의 해라고 정하고 노력을 해 봤는데 안 되겠다 싶자 아예 2020년까지를 생물다양성의 10년으로 정했습니다. 이번 평창 회의의 가장 중요한 의제 중의 하나가 생물다양성을 어떻게 주류 이슈로 삼느냐는 것인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디서 어떻게 생물들이 사라지는지 일상생활에서는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런 차원에서 중간지점인 지금 유엔의 전략이 성공하느냐 마느냐의 굉장히 중요한 갈림길에 놓여 있습니다.”
1980년대 중반 코스타리카의 몬테 베르데라는 고산지대에서 개미를 연구하던 그는 반짝반짝하는 오렌지 색깔의 황금개구리에 매료됐다. 발견되자마자 인기 만점이었던 이 개구리는 하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유엔 기구를 통해 멸종됐다고 발표됐다.
“스타의 탄생에 설렘도 잠시 금방 요절해 버렸습니다. 마치 제임스 딘 같은 존재였죠. 저는 5년 동안 딱 2번 봤습니다. 지금도 열대지방에 가면 밤중에 혹시나 볼 수 있을까 하고 돌아다닙니다. 이렇게 지구에 우리와 함께 있었다가 사라지는 종이 아주 많습니다. 이걸 멈추도록 해야 합니다.”
세종=윤지희 기자 phh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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