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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사람들, 노숙인] 비극 대물림… 차가운 거리로 내몰린 새싹들

입력 : 2014-10-21 18:35:02 수정 : 2014-10-22 15:2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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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현장취재… 서울역 네살배기 성우의 하루 “어머! 저기에 웬 애가….”

지난 15일 서울 중구 서울역 앞 광장을 지나던 한 중년 여성은 발걸음을 멈추고 안타까운 듯 혼잣말을 했다. 시선이 미친 곳에는 때가 낀 맨발의 아이가 노숙인들 사이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이를 본 사람들은 놀란 표정이었지만,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닥에 드러눕기까지 했다. 주변 상인들은 익숙한 광경인 듯 무심한 말투로 “거의 매일 오는 아이”라고 말했다.

아이의 이름은 성우(4·가명)다. 성우의 엄마 김모(38)씨는 10년 전쯤 서울역 앞에서 노숙생활을 시작했다. 성우 위로 누나 2명은 아동보호시설에 보냈다. 다음 달이면 뱃속에 있는 넷째가 태어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다. 김씨는 “아이 아빠는 서울역에서 만난 노숙인”이라며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노숙인 엄마와 함께 생활하는 성우(4·가명)가 지난 10일 서울역 앞 광장에 설치된 노숙인 체험 행사용 박스 사이에서 놀고 있다.
이지수 기자
태어나자마자 시설에 맡겨졌던 성우는 지난해 3월 엄마를 따라 서울역으로 옮겼고, 같은 해 9월 국가 지원으로 용산구 동자동의 한 쪽방에 들어갔다. 그러나 성우네 모자가 서울역 앞을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다. 

성우 엄마는 노숙을 하던 시절처럼 거의 매일 오후 내내 서울역 앞 노숙인들과 함께 지낸다. 성우도 어린이집이 끝나면 서울역 광장을 놀이터 삼아 뛰어논다. 이날은 어린이집에서 소풍을 가는 날이었지만 엄마는 “김밥 살 돈이 없다”며 성우를 보내지 않았다.

피부병이 있는 성우 엄마는 간지러운지 자주 발을 긁었다. 그럴 때마다 발에서 각질이 떨어져 나왔지만, 발을 긁은 손으로 곧장 과자를 집어 성우 입에 넣어줬다. 양말 없이 운동화만 신고 있던 성우는 시간이 지나자 아예 신발을 벗어 던졌고, 담배 연기를 내뿜는 노숙인들 틈에 아무렇지도 않게 앉았다. 아이 옆에서 노상방뇨를 하는 노숙인도 있었다.

이날 오후 성우가 먹은 것은 음료수 반 캔과 과자 반 봉지, 땅콩 다섯 알, 그리고 엄마와 나눠먹은 우동 한 그릇이 전부였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것은 물론 물도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 땅에 떨어진 초콜릿을 주워 먹기도 했다. 성우네 모자는 오후 10시가 다 되어서야 다시 쪽방으로 돌아갔다.

성우(4·가명)와 연주(3·가명)가 지난 10일 서울역 광장에서 맥주를 마시는 노숙인들 사이에 앉아 있다.
이지수 기자
제대로 된 보살핌 없이 거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성우의 사례는 노숙인 2세의 양육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성우는 하루 중 반나절을 노숙인과 다름없이 생활을 하지만 거주지가 있다는 이유로 정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방치되고 있다. 담당 아동보호기관은 세계일보 취재가 시작되자 뒤늦게 상황 파악에 나섰고, 지난주 말 성우를 엄마와 분리해 시설로 보냈다.

그러나 성우가 정말 서울역을 다시 찾지 않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전문가들은 노숙인 2세가 또다시 노숙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교육·양육 지원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0년 뒤, 서울역 앞에서 또다시 성우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김유나·이지수 기자 yoo@segye.com

● [잊혀진 사람들, 노숙인] 술취한 어른들을 친구삼아 노는 '광장의 아이들'
● [잊혀진 사람들, 노숙인] 노숙인의 심각한 性문제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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