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 “회사가 지나친 개입” 지적
조양호 회장, 증인 출석 의사 밝혀 대한항공이 지난해 12월 벌어진 ‘땅콩 회항’ 사건 당시 미국 뉴욕 JFK공항에서 찍힌 폐쇄회로(CC)TV 동영상을 20일 공개하며 항로 변경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한 처벌과 관련해 항로 변경 여부가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밝혔지만 일각에선 회사가 퇴직자인 조 전 부사장을 위해 지나치게 나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항로에 대한 명확한 규정도 없는 상황에서 대한항공이 조 전 부사장에게 유리한 일방적인 주장으로 법원 판결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비난도 제기된다.
이날 공개된 영상에는 지난해 12월5일 조 전 부사장이 탄 뉴욕발 인천행 대한항공 KE086편 항공기가 7번 탑승구 연결통로(브리지)에서 떨어져 토잉카에 끌려 후진했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4분가량의 상황이 담겨 있다. 이를 두고 대한항공 측은 “동영상을 보면 비행기가 활주로도 아닌 주기장 내에서 17m가량 차량(토잉카)에 의해 밀려서 돌아온 것으로 항로 변경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대한항공은 “일반적으로 항공 관련 법규에서 ‘항로’라는 개념은 ‘항공로’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며, 고도 200m 이상의 관제구역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당시 항공기는 엔진에 시동을 걸지 않았고, 주기장에서의 이동이기 때문에 ‘항로’라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대한항공 주장은 법적 판단과 다를 수 있다. 현행 항공보안법에는 승객이 탑승한 뒤 항공기의 모든 문이 닫힌 때부터 내리기 위해 문을 열 때까지를 ‘운항’으로 본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 규정대로면 문이 닫히고 비행기가 17m 움직인 KE086편은 항로상에 있던 셈이다.
이 문제는 국토교통부의 조사 과정에서도 논란이 됐다. 국토부는 당시 브리핑에서 ‘항로 이탈로 볼 수 있냐’는 취재진 질문에 “정확히 말하기 곤란하다”고 답했다. 항공보안법으로 보면 항로지만 항공로 등의 개념과의 상충 여부 등도 따져봐야 한다는 의미였다.
국토부가 조사를 종결하면서 조 전 부사장의 고성과 폭언에 대한 혐의(승객의 협조의무 위반)로만 검찰에 고발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폭언 외 나머지 부분은 사법기관의 법리적 판단에 따르기로 한 것이다. 결국 법원이 이 항공기가 항로에 있었는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이날 대한항공의 주장은 업계 일각에서 통용되는 개념일 뿐이며, 오히려 사법부 판단을 예단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변호사 A씨는 “재판 중인 사안에 대해, 그것도 핵심 쟁점에 대해 이해당사자 격인 회사가 이런저런 의견을 공개적으로 피력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행위”라고 말했다.
30일 진행될 2차 공판에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증인으로 출석한다. 조 전 부사장의 변호인은 이날 “조 회장이 법원의 출석 요구를 듣고 ‘나가는 것이 도리’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서울서부지법 제12형사부는 사건 내막을 폭로한 박창진 사무장의 계속 근무 가능 여부가 관심사라며 직권으로 조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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