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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일상 톡톡] 눈물과 함께 억울함을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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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1-22 05:00:00 수정 : 2015-02-15 16: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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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먹자골목에서 고기집을 운영하는 김모(45)씨는 연말연시지만 예약 한 테이블 없는 요즘 그의 마음을 더 어렵게 만드는 손님들이 있다. 이른바 ‘진상’으로 일컫는 일부 손님들인데, 지난 8일에도 단골을 자처하며 난리 치는 손님이 들어왔다. 최근 재료비와 가스비 등 공공요금 상승으로 불가피하게 음식값을 소폭 인상했는데, 이들은 올 때마다 가격이 비싸다는 등 몇 마디씩 쓴소리를 건네며 행패를 부리고 있는 것. 김씨는 “불경기라 최하의 가격으로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일부 손님들이 다른 곳과 비교를 한다든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 종종 있다”며 “정말 마음 같아선 다른 곳으로 가라 하고 싶지만 그럴 순 없기에, 그냥 속만 새까맣게 타 들어 간다”고 하소연했다.

3년 전 직장을 퇴직한 박모(49)씨는 퇴직금을 모아 인천에서 호프집을 운영하고 있다. 박씨는 “손님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상황이지만, 추태를 부리는 손님을 받으면 나도 모르게 갑자기 울컥하게 된다”며 “간, 쓸개 다 내놓고 하는 장사라지만 그래도 직장생활을 하는 게 마음 편했던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 감정노동자, 일반근로자보다 자살 위험 330% ↑

지속된 경기불황과 소비심리 위축으로 자영업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직접 손님들을 상대하는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들은 업주라는 부담까지 더해 고된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연세대 김인아 교수의 ‘감정노동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조사에 따르면, 감정노동자들은 일반적인 근로자보다 우울감이 3.7배, 자살 생각에 대한 위험도는 3.3배가 높게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나라보다 감정노동의 강도가 높은 편”이라며 “고객 중심의 서비스는 당연한 것이지만, 소비자들과 노동자들 간의 인식과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 "부모 잘 만나 공부만 하는 친구들이 부러워요"

대학생 최모(27)씨는 학비에 보탬이 되기 위해 바(bar)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하지만 최씨의 스트레스는 이만 저만이 아니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팍팍한 일상이 연속이고, 근로 환경도 최씨와 맞지 않지만, 마땅히 일할 곳도 없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일하기 때문. 그는 “밤에 만취한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면 알바라고 무시 받는 경우도 종종 있고, 이럴 때마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정말 굴뚝같다”며 “복학하고 생계 유지가 어려워 알바를 시작했지만 이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어려울 줄 몰랐고, 경제적 여건만 된다면 공부만 하며 살고 싶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일하는 대학생 이모(23·여)씨는 “편의점 근로환경이 열악한 건 알고 시작했다”며 “하지만 다양한 진상 손님을 대하며 적은 시급을 받을 때면 ‘내 인생이 평생 이런 건 아닌가’라는 씁쓸한 기분까지 든다”며 고개를 떨궜다.

아르바이트 전문 구인구직 포탈 알바몬이 최근 아르바이트생(알바생) 919명을 대상으로 한 '매너 손님과 비내너 손님'을 주제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알바생 90.8%가 '알바 도중 손님의 비매너에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비매너 행위를 살펴보면 ▲'어이, 야, 이봐 알바! 등 함부로 알바생 부르기(34.7%)' ▲'본인 실수를 가지고 알바생에게 사과 요구하기(13.3%)' ▲'트집 잡아 알바생에게 화풀이하기(10.0%)' 등이 알바생을 힘들게 하는 행위로 꼽혔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알바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과 법률적 보호가 없는 것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알바연대 관계자는 “지속된 경기불황으로 이제 알바는 용돈벌이나 사회 경험을 쌓기 위한 수준을 넘어, 학생들이 생계 유지를 위해 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정부기관에서 실태조사는 여러 번 하지만 개선되지 않고 항상 비슷한 결과가 도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어이~ 야, 이봐 알바!”

한편, 최근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된 손님의 지나친 횡포, 이른바 '갑(甲)질' 사건의 배경은 주로 백화점이지만 또 다른 대표 서비스업인 호텔업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오히려 호텔의 경우 백화점보다 고객만족과 그에 따른 대외적인 평판이 더 치명적이라, 종사자들이 눈물과 함께 억울함을 삼키고 고객의 무리한 요구까지 모두 받아주는 경우가 더 많다.

실제 서울 시내 한 특급호텔에서 근무하는 호텔리어들이 최근 수년간 실제로 겪은 '황당한 경험'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A호텔의 경우 한 여성 고객의 다이아몬드 반지 하나 때문에 피트니스센터와 수영장 전체가 말 그대로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 고가의 피트니스센터 회원으로, 자주 호텔을 찾은 이 여성은 어느 날 운동을 마친 뒤 자신의 2캐럿 상당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없어졌다면서 호텔측에 도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배상하라고 거세게 항의했다. 트레드밀과 수영 등 운동 내내 뺀 적도 없는 반지가 사라졌다는 것이 이 고객의 주장이었다.

이에 호텔측은 혹시나 운동 중 반지가 빠졌을 경우를 가정해 피트니스센터가 쉬는 주말마다 모든 운동기구를 들어내고, 실내 트랙의 인조 잔디까지 걷어내며 3주에 걸쳐 샅샅이 뒤졌다. 심지어 수영장 물까지 모두 빼 바닥도 살폈지만 결국 반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반지 찾는 것을) 사실상 포기한 호텔이 배상 건을 논의하러 해당 고객에게 전화하자, 허탈하게도 ‘그 반지가 우리 딸네 집에 있었네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B호텔 직원들은 정전 사고를 낸 고객으로부터 오히려 호된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정전 신고를 받고 한 객실로 뛰어가보니, 콘센트 합선 사실이 확인됐다. 호텔 벽에는 대부분 해외 전자기기도 이용할 수 있도록 3개 구멍이 삼각형 모양으로 배열된 멀티콘센트가 쓰이는데, 술에 취한 고객이 억지로 대각선에 위치한 두 구멍으로 플러그를 끼운 것이다. 호텔 직원이 이 같은 원인과 상황을 설명하자, 남성 고객은 다짜고짜 그런 일이 없다며 "나한테 잘못을 뒤집어 씌우는 것이냐. 왜 기분 나쁘게 생글생글 웃고 비웃느냐"며 한동안 생떼를 썼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일부 고객이 부당한 요구를 해도 사실 호텔로서는 인터넷이나 SNS, 메신저 등의 소문과 평판을 고려해 웬만하면 양보하고 또 수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며 “대부분의 고객은 편안한 마음으로 호텔 서비스를 즐기며 휴식을 취하는데,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입실에서 퇴실까지 정해진 시간 안에 최대한 모든 것을 누리고 가겠다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요구하는 고객들은 그 어떤 서비스에도 만족하지 못한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 상처 주는 언행(言行)…스스로 되돌아보는 계기 돼야

올해 1월1일부터 규모와 관계없이 모든 음식점과 PC방·커피전문점 등 금연구역을 전면 확대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일부 '진상' 손님들은 오히려 '갑질' 행사를 하며 담배를 피우고 있어 업주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울에서 한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채모(36)씨는 금연구역이 확대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시행 7일 전부터 '흡연 금지'라는 문구를 크게 내걸었다. 하지만 일부 손님들이 정책이 시행됐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금연석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어, 채씨는 정부 단속에라도 걸릴까 애만 태우고 있다.

그는 “매장에서 담배를 못 피우게 규정되어 있는데 종이컵을 가져다가 무작정 피울 땐 정말 난처하다”며 “손님들에게 정중히 금연구역이라는 점을 설명해도 ‘담배 피우다 걸리면 내가 과태료 내면 되지 않느냐’며 되레 큰소리를 친다”고 하소연했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최근 ‘땅콩 회항’, 유명백화점 직원 뺨 폭행 등 이런 사건들은 빙산의 일각일 뿐 크고 작은 갑질이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으며, 혹시 나도 이들에게 무심코 반말이나 스트레스·상처를 줄 언행을 하지 않았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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