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현실 생생하게 묘사
소설가 정아은(40·사진)씨가 새 장편 ‘잠실동 사람들’(한겨레출판)을 펴내면서 붙인 ‘작가의 말’이다. 2013년 ‘모던하트’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온 정씨는 이번 장편에서 현란한 사교육이 난무하고 욕망이 들끓는 강남을 무대로 지금 이곳의 부조리한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정씨가 상정한 ‘잠실’이라는 공간은 강남이면서도 강남 같지 않은 곳이다. 고층 빌딩 숲과 재래시장과 빌라촌이 공존하는 이곳은 “강남을 선망하는 비강남권 사람들에게는 강남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 스스로는 끊임없이 ‘진짜 강남’을 향해 해바라기하는 유사 강남지역”이다. 그런 만큼 사교육 1번지라는 대치동 학원가와 잠실 사이를 아이들을 태우고 쉼 없이 오가는 엄마들의 만화경이 더 다채로울 수밖에 없다.
소설은 짧은 문장과 에두르지 않는 묘사로 빠르게 전개된다. 한 명의 화자가 아니라 이곳에서 거주하거나 일을 하는 다양한 인물의 시점으로 번갈아 이어간다. 학비를 벌기 위해 빌라촌 반지하에 방을 얻어 고층아파트 남자에게 몸을 파는 ‘대학생 이서영’에서 시작해 지환 해성 경훈 태민의 엄마들, 어학 상담원과 학습지 교사와 과외교사, 파견도우미, 초등학교 교사 김미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자신의 눈높이로 사교육 광풍이 휩쓰는 욕망의 거리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관자놀이의 맥박이 빨라지면서 혈압이 올라갈지 모른다. 모든 서비스를 돈으로 해결하려는 엄마들의 행태와 그 밑에서 결과적으로는 학대당하는 학원 인생의 어린 아이들이 가련하다. 물론 독자에 따라서는 다르게 읽힐 여지도 있다. 강남 아줌마들의 교육 방식이 궁금한 이들에게는 궁금증을 덜어주는 유용한 정보가 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에서 자녀의 미래 계급을 걱정하는 현실적인 독자를 비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만큼 이번 장편은 흡입력이 강하다.
정씨는 이번 작품이 헤드헌터의 일상을 통해 학벌이 계급으로 작동하는 사회를 그린 전작을 쓰면서 생겨난 부산물 같은 이야기라고 말한다. 부산물치고는 자식 교육이라는 명분, 그 민낯의 욕망을 직격하는 성실한 취재와 힘찬 서술이 묵직하다. 정작 교실의 공교육은 어떻게 어이없이 망가지는지, 그렇게 만드는 욕망의 치맛바람을 섬세하게 보여주는 미덕도 상당하다. 문학을 떠나서라도 작금 우리 교육의 이면을 들여다볼 자료로 일독할 만하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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