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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의 침상에서/ 흰 물결의 이불을 차던지고/ 내리쏘는 태양의 금빛 화살에 얼굴을 얻어맞으며/ 남해의 늦잠재기 적도의 심술쟁이/ 태풍이 눈을 떴다.” 김기림이 쓴 시 ‘태풍의 기침(起寢)시간’ 의 한 구절이다. 시인은 태풍이 생성되는 모습을 희화적으로 묘사했지만, 현실의 태풍은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태풍은 북태평양 남서 해상에서 소용돌이치며 발생하는 강력한 열대 저기압이다. 매년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찾아오는 태풍은 온 줄도 모르게 비껴갈 때도 있지만, 때로는 강풍과 폭우로 모든 것을 쓸어가는 공포의 대상이다.

태풍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typhoon’은 그리스 신화의 티폰에서 유래했다. 100개의 뱀 머리를 지녔고 눈에서는 불을 뿜어내는 괴물이다. 제우스가 괴물들을 물리칠 때 티폰에게 벼락을 내리쳐 지하세계인 타르타로스로 내쫓았는데, 티폰은 거기에서 태풍을 일으킨다고 한다. 동양에서도 예전에는 태풍을 괴물의 소행으로 여겼다.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태풍과 폭우는 흔히 교신(蛟蜃·이무기) 같은 괴물의 장난으로 되는 것인데, 이에 이르러 어룡(魚龍)이 안식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라고 했다.

지금 태풍 ‘노을’이 북상 중이다. 태풍에 공식적으로 이름이 붙은 것은 1953년부터다. 괌에 위치한 미 태풍합동경보센터 예보관들이 아내나 애인의 이름을 태풍 이름으로 썼다. 여성처럼 온순하고 조용해지라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그후 여성단체들이 항의하자 1978년부터 남성과 여성의 이름을 번갈아 쓰다가 2000년부터 아시아 태풍위원회 14개 회원국이 제안한 이름들을 순서대로 쓴다. ‘노을’은 북한이 제안한 이름이다. 지난주 말 괌 부근 해상에서 새로 생성된 태풍은 홍콩이 제안한 ‘돌핀’이다.

‘노을’은 올해 제6호 태풍이다. 1∼5호 태풍은 며칠 만에 괌이나 필리핀 인근 해상에서 소멸했는데, 지난 4일 괌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노을’은 좀처럼 가라앉을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필리핀 북단에 상륙해 현지 주민들에게 많은 피해를 안긴 뒤 대만 동쪽 해상을 지나 일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 여파로 우리나라에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 태풍이야 매년 오는 불청객이지만 올해는 꽤 빨리도 왔다. 게다가 북한이 지은 이름이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로 놀라게 한 것으로는 모자란 모양이다.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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