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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전우 위해… ‘日정부 공식 사죄’ 요구한 일본의 양심

입력 : 2015-08-14 23:23:46 수정 : 2015-08-14 23:2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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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마 에이지 지음/김범수 옮김/동아시아/1만6000원
일본 양심의 탄생/오구마 에이지 지음/김범수 옮김/동아시아/1만6000원


‘일본 양심의 탄생’에서 그려지는 주인공은 오구마 겐지(小熊謙二·91)다. 일본 사학 명문 게이오기주쿠대 교수인 저자는 아버지 오구마 겐지와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일본의 지난 20세기를 비판한다.

1945년 2월 시베리아에서 포로로 잡히기 직전 장교 복장의 오구마 겐지.
아버지 겐지는 1945년 스무살 때 일본군에 입대한 직후 소련군 포로로 잡혔다. 3년간 시베리아 수용소 생활 중 조선인 오웅근을 만난다. 만주 출신의 오웅근은 시인 윤동주가 다녔던 광명국민고등학교(중학교 과정)를 졸업한 사람이다.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었으나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무기도 지급받지 못한 채 전투에 투입된다. 당시 소련군 포로 가운데 일본군 조선인의 숫자는 약 1만명이었다. 만주로 돌아온 오웅근은 옌볜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지만, 일본군 출신이란 이유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이후 일본 정부가 주는 위로금도 받지 못했다. 중국 국적자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의 국적은 본인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일본 NHK TV와 인터뷰하고 있는 오웅근씨.
겐지는 오웅근과 재회하면서 일본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징집해놓고 지금은 외국인이기 때문에 지급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후 겐지는 정부로부터 받은 위로금 10만엔의 절반을 보냈으나 오웅근은 받지 않았다. 대신 오웅근은 겐지와 함께 1996년 9월 도쿄지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다. 소장은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손해배상을 요구한 것이다.

전쟁에서 돌아온 겐지는 단 한 번도 군국주의자와 자민당에게 투표하지 않았다. 난징대학살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정치인을 보면서, 책으로만 세상을 배운 사람들이라고 비판했다. 자신이 몸으로 겪은 전쟁은 그만큼 아픈 상처였다. 수용소에서 돌아온 직후 50년대 초반에는 사회당, 공명당에 투표했다. 사회주의에 기대지는 않았으나 ‘보수 정당의 발목을 잡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2000년 2월 두 사람은 패소했다. 도쿄지법은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냈다.

이 책 저자인 아들 오구마 에이지는 2014년 4월 베스트셀러 ‘사회를 바꾸려면’을 내면서 양심을 저버리는 일본 정부를 비판했다. 저자는 ‘전범국가 일본’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하며 우익 일본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저자는 “일생 동안 길러온 양심의 힘이 절실한 이 시대를 살고 있다. 겐지는 여전히 살아 있고 우리는 그와 동시대에 있다. 8월 15일 이 책을 통해 겐지와 한국인들의 양심은 한데 모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김신성 기자 ss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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